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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유명인사 조문만 받겠다는 CJ

입력
2015.08.2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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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맹희 CJ 명예회장의 영결식장에 영정사진이 보이고 있다. CJ그룹 제공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맹희 CJ 명예회장의 영결식장에 영정사진이 보이고 있다. CJ그룹 제공

먼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는 지난 나흘을 고(故)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빈소가 있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보냈습니다. 낯설지 않은 곳입니다. 2011년 12월 30일 타계한 고(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빈소도 바로 이 곳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사회부 기자였던 저는 5일장으로 치러진 김 고문의 마지막을 함께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룬 것은 물론입니다. 김 고문이 재야 민주화 운동의 대부였던 만큼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겠죠. 게다가 고인과는 일면식도 없는 일반 시민들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빈소를 찾았습니다. 조문을 기다리는 줄이 너무 길어 한때는 두 줄로 늘어설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5만 여명이 빈소를 다녀갔습니다. ‘아무나’ 문상을 받아서 문제가 있었냐고요? 아주 질서정연하게 무사히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명동성당에서 열린 영결식에도 1,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고인을 배웅했습니다. 아마도 마지막 가는 길이 외롭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랜만에 다시 상가 취재를 해봤더니 그새 새로운 풍속이 생긴 모양입니다. 이른바 ‘조문 예약’입니다. CGV에서 영화를 볼 때처럼 이제는 조문을 하기 위해서도 대기표를 뽑고, 예약을 해야 되는 걸까요. 장례 기간 동안 CJ그룹은 철저하게 빈소를 통제했습니다. 기자들도 빈소로 통하는 자동문 밖에 포토라인을 만들고 그곳에서만 취재를 했습니다. 유족들의 뜻을 존중한 것입니다. 하지만 바쁜 시간을 쪼개 고인을 애도하기 위해 발걸음한 조문객들을 가려 받은 CJ그룹의 처사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더군요. 얼굴이 알려진 정ㆍ재계 인사나 연예인은 프리패스를 얻은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일일이 빈소 밖 ‘검문’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장례식장 입구를 지키고 있던 CJ 직원들은 이들에게 조문 예약 여부나 고인과의 관계를 물었습니다. 상주의 동창이라고 한 남성은 20분 이상 빈소 밖에서 조문 허가를 기다려야 했고, 조의금 봉투까지 들고 온 한 여성은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차분하고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고인을 애도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한다는 게 CJ그룹 측의 설명입니다. 조문객들이 5만명에 달할 정도로 북적거려 경건한 분위기가 깨질까 우려했던 걸까요. 유명세에 따라 조문객을 가려 받는다니 상가 인심이 야박하다는 말이 나올 법합니다.

장례 기간 동안 CJ 직원들의 노고도 컸습니다. 그룹장을 치르면서 그룹 홍보팀뿐 아니라 각 계열사 홍보팀 직원들이 총출동했습니다. 홍보 업무 경험이 있는 타 부서 직원들도 동원됐습니다. 이들은 사무실이 아닌 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을 안내하고, 장례 물품을 옮기는 등 ‘초과 근무’를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가족들끼리 단촐하게 치르고 싶었다면 가족장으로 치를 일입니다.

권영은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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