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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총잡이들 사이, 칼잡이 이병헌의 존재감

입력
2016.09.1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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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그니피센트 7'은 이질적인 인물들이 악당에 맞서는 과정을 묵직한 액션으로 보여준다. UPI 제공
영화 '매그니피센트 7'은 이질적인 인물들이 악당에 맞서는 과정을 묵직한 액션으로 보여준다. UPI 제공

한국에선 유행 지난 지 한참 된 서부영화다. 거친 총잡이들이 등장해 무도한 악당들에 대항한다. 선량한 시민들의 억울한 사연이 끼어들고, 정의의 사도가 당연한 듯 나타난다. 손가락으로 권총을 빙글빙글 돌리고, 손바닥으로 노리쇠를 연신 후퇴시키며 연발로 사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40대 이상이라면 이미 오래 전 마르고 닳도록 봐 왔던 모습들. 게다가 왕년의 명작 서부극 ‘황야의 7인’(1960)을 새롭게 만들었다. 이만하면 호기심은 줄어들 대로 줄어들 수밖에. 하지만 이병헌이 주연이라면 궁금증이 거품처럼 부풀어 오른다. 추석 연휴를 맞아 14일 개봉하는 할리우드 영화 ‘매그니피센트 7’(감독 안톤 후쿠아)은 국내에서 유난히 눈길을 모은다. 12일 서울 삼성동 한 멀티플렉스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한국일보 영화팀 기자들이 ‘매그니피센트 7’을 첫 대면했다.

배경은 당연하게도 미국 서부개척시대. 서부 작은 마을 로즈 크리크의 주민들은 악당 보그(피터 사스카드)의 악행에 신음한다. 금맥을 찾아 다니는 보그는 주민들에게 헐값에 땅을 팔고 떠나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을 행한다. 보그 일당에게 남편을 잃은 엠마(헤일리 베넷)는 인근 마을에서 만난 현상금 사냥꾼 치좀(덴젤 워싱턴)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어떤 이유에선지 치좀은 엠마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자신을 도와줄 총잡이들을 하나 둘 모은다. 도박꾼 패러데이(크리스 프랫)과 남북전쟁시절 인연을 맺었던 굿나잇(이선 호크), 굿나잇의 동료 빌리(이병헌)를 포섭하고, 자신이 쫓던 범죄자 바스케즈(마누엘 가르시아 룰포)를 어른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옛 인디언 사냥꾼 잭 혼(빈센트 도노프리오)과 인디언 전사 하베스트(마틴 센스마이어)가 합류하며 7인의 멤버가 구성된다. 이들은 로즈 크리크에 들어가 본격적인 악당 소탕 작전에 나선다. 15세 관람가.

★다섯 개 만점 기준, ☆는 반 개.

'매그니피센트 7'은 이야기보다 액션에 집중하며 볼거리를 제공한다. UPI 제공
'매그니피센트 7'은 이야기보다 액션에 집중하며 볼거리를 제공한다. UPI 제공

묵직하고도 묵직한 서부극의 진수

‘매그니피센트 7’의 밑그림이 된 ‘황야의 7인’은 일본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1954)를 원작으로 삼았다. ‘매그니피센트 7’은 리메이크작을 리메이크한 셈이다. 열성 영화 팬들이라면 익숙한 이야기 전개에 자꾸 몸을 뒤척일 수도 있다. 특히나 ‘7인의 사무라이’를 본 관객이라면 자연스레 원작과 ‘매그니피센트 7’를 비교하게 된다. 세계 영화사에 굵은 자국을 남긴 ‘7인의 사무라이’와 견주면 ‘매그니피센트 7’은 자연히 초라해진다. 하지만 원조를 잊고 본다면(또는 보지 않고 관람한다면) ‘매그니피센트 7’은 즐길 거리가 많은 영화다.

딱히 착하지 않고 어두운 과거까지 지닌 인물들이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에 맞서는 과정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서부영화에 익숙지 않은 젊은 세대라면 더 흥미를 가질 가능성이 크다. 손놀림이 빠른 치좀, 매사 낙관적인 패러데이, 명사수 굿나잇, 단도를 잘 쓰는 빌리 등 캐릭터의 개성도 매력 포인트. 무엇보다 영화의 재미는 앞만 보고 달리는 듯한 묵직한 액션에 있다. 등장인물들이 눈도 꿈쩍 않고 총을 쏘고 몸을 던지는 하드보일드 액션이 빛나는 영화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이병헌은 단도를 잘 쓰면서도 몸동작이 빠른 빌리를 연기하며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UPI 제공
이병헌은 단도를 잘 쓰면서도 몸동작이 빠른 빌리를 연기하며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UPI 제공

전천후 전사 이병헌이 눈길 잡는다

분명 미국의 서부영화인데 많이 진화한 느낌이다. 일단 1960년 개봉한 ‘황야의 7인’을 리메이크 했다지만 그 뼈대가 다르다. 율 브린너, 스티브 맥퀀, 찰스 브론슨 등 백인 일색의 주인공들이 대폭 바뀌었다. 흑인(덴젤 워싱턴)이 중심에 서 있고, 동양인(이병헌)이 없어서는 안 될 든든한 존재로 부각됐으며, 멕시코 출신 배우(마누엘 가르시아 룰포)와 인디언 전사(마틴 센스메이어)가 가세한다. 백인은 3명뿐이다. 더욱 놀라운 건 서부영화에선 배제되는 게 당연시됐던 여성이 극을 이끌고 있다는 것. 보그 일당에게 남편과 마을의 터전을 잃은 엠마가 치좀을 고용한 것도 모자라 장총을 들고 적을 무찌르는 데 한 몫을 해낸다. 여전사가 따로 없다.

그러나 치좀이 6명의 무법자들을 모으는 과정이 개연성이 떨어지는 등 스토리의 완성도는 아쉽다. 이유도, 온정도 없이 무조건 총질을 해대는 무법천지에 여성 관객들은 기함할 수도. 이병헌은 역시 영화 속에서 ‘열 일’을 해낸다. 뛰다가 손가락만 까딱하는 멤버들과 달리 뛰고, 구르고, 싸움질까지 담당한다. 칼을 잘 쓰는 암살자라서 단도를 주로 쓰지만, 권총 장총 등 가리지 않고 무기를 다루는 전천후다. 영화 시작 후 30분만 참고 기다리자.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매그니피센트 7'는 서부극의 클리셰를 현대적 화법으로 전한다. UPI 제공
'매그니피센트 7'는 서부극의 클리셰를 현대적 화법으로 전한다. UPI 제공

현대적 감성으로 풀어낸 세련된 서부영화

석양빛을 뚫고 흙먼지 폭풍을 일으키며 황야를 질주하는 무법자들의 모습이 아름다운 풍광처럼 다가온다. 대지를 뒤흔드는 말발굽 소리에 심장 박동도 덩달아 빨라진다. ‘매그니피센트7’의 장르적 쾌감은 시각과 청각의 화려한 합주에서 비롯된다. 머리 위로 총알이 쉴 새 없이 날아드는 격전지 한가운데에 놓인 듯 휘몰아치는 감각의 향연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서부영화에 익숙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다. 서부영화의 클리셰들이 현대적 감성으로 세련되게 재탄생해 거리감을 줄인다. 일곱 명의 총잡이가 위기에 몰린 마을 사람들을 규합해 탐욕스러운 자본가를 상대로 결전을 벌이는 하이라이트 장면은 화려한 액션과 속도감이 단연 압권이다.

그다지 정의롭지 않은 서부개척시대의 총잡이들이 약자들을 위해 목숨 바치는 이야기는 단순하면서도 지극히 마초적이다. 주인공들 사이에 오가는 시답잖은 농담들은 캐릭터의 개성을 드러내며 소소한 웃음을 자아낸다. 죽음 앞에서도 담배를 빼 무는 모습에선 예스러운 낭만이 느껴진다.

이병헌의 존재감은 꽤 돋보인다. 서부개척시대의 동양인, 더구나 총잡이들 사이의 칼잡이라니. 그런데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건 이병헌의 연기 덕분이다. 표정으로 압도하는 연기력은 할리우드 명배우 워싱턴이나 호크에도 절대 밀리지 않는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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