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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인간다운 죽음을 향한 첫걸음은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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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인간다운 죽음을 향한 첫걸음은 뗐다

입력
2016.01.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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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존엄사법’ ‘웰다잉법’으로 불리는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이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1997년 환자 부인의 요구로 연명치료를 중단했던 보라매병원 의사 2명이 살인방조죄로 처벌된 지 18년 만이다. 미국(1976년) 대만(2000년) 영국(2005년) 등에 비해 10~40년이나 뒤졌지만,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덜어주고 인간다운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 법은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18년부터 시행된다.

법안은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대상을 계속 치료해도 회생 가능성이 없고 사망이 임박한 임종 단계의 환자로 엄격하게 제한했다. 이런 환자에겐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 네 가지 연명의료를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환자가 직접 작성해 의사 확인을 받거나 의사가 환자 의견을 문서로 작성한 기록이 있어야 한다. 다만 불의의 사고로 혼수 상태에 빠진 경우에는 가족 전원의 합의로도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여전히 종교적, 윤리적 논란의 소지는 있다. 유교문화가 뿌리깊은 우리 정서상 가족과 의료진이 연명의료 중단의 결과 마음의 상처를 안을 수 있다. 일부 종교단체는 경제적 이유 등으로 ‘소극적 안락사’가 장려되는 결과가 될 것임을 우려한다.

그렇지만 존엄사법은 시대의 요구이자 환자의 자기결정권 존중 측면에서 바라보는 게 옳다. 한해 5만 명의 임종환자가 의료장치를 주렁주렁 매단 채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는 건 분명 정상이 아니다. 노인의 92%가 연명의료에 반대한 것도 인간다운 모습으로 세상을 떠날 권리를 존중해 달라는 외침이다. 더욱이 이번 법안은 연명의료 중단을 의사들의 판단에 맡기는 유럽이나 가족에 의한 대리결정을 허용하는 미국 일본 대만 등에 비해 훨씬 엄격하고 까다로워 제도 악용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법 시행까지 2년의 준비기간이 남아 있다. 환자가 직접 작성하는 ‘사전의료의향서’ 서식 마련, 등록기관 지정, 연명의료 설명에 필요한 건강보험 수가 개발 등 할 일이 많다. 호스피스 인프라를 대폭 강화해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지금은 말기 암 환자의 13.8%, 전체 환자의 3.5%만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고 있다. 미국은 그 비율이 44.6%나 된다. 안타깝게도 국회의 법안 처리가 늦어지는 바람에 호스피스 병상을 늘리는 등의 관련 예산이 올해 예산안에 반영되지 못했다. 정부는 모든 국민이 아름답게 삶을 마칠 수 있는 의료문화가 조기에 정착할 수 있도록 제반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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