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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니까 청춘이다? 웃프프 ㅡ.ㅡ;

입력
2015.03.1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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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컵으로 커피숍 손님인 척

전공서적은 도서관 대출로 때우고

'100% 출석하면 환불' 강의 듣기

궁여지책 자린고비 천태만상

대학 졸업생 58% "빚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아니다. 청춘이라 삼포세대가 된 거다. 절약이 미덕이라고? 역시 아니다. 절약은 내일의 밥값을 벌기 위한 궁여지책일 뿐이다. 어쩌다 보니 생활형 자린고비족이 된 2030세대들. 그들이 숨어있는 ‘웃픈’(웃기고 슬픈) 현장으로 한번 가 보자.

커피숍에선...

11일 오전 8시 신촌의 한 커피숍 2층 창가 구석. 어김없이 한 남자가 있다. 그는 공부 중에도 자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때가 됐다는 듯 마침내 일어선다. 근처에 있던 손님이 밖으로 나가자 잽싸게 빈 컵을 들고 자기 자리로 돌아온 것. 이제야 안심이라는 듯 이후엔 책상만 보면서 공부를 했다. 서울 유명 사립대를 나온 김모(33)씨의 오전 일상이다. 김씨는 “5년째 입사에 실패해 돈은 없고 동네에 공공도서관도 없다”며 “커피값이 비싸서 남이 두고 간 테이크아웃컵이나 머그잔을 내 자리에 갖고 와 손님인 척 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발 아래 콘센트엔 노트북과 휴대폰 충전기가 꽂혀 있었다. 이 또한 전기료를 아끼기 위함이라고 했다.

또 다른 커피숍. 4명의 대학생이 커피 2잔을 시키면서 “따뜻한 물이 담긴 컵 2개도 같이 주세요”라고 말한다. 이후 칵테일 섞듯 커피2잔과 물을 섞더니 연한 아메리카노 4잔을 뚝딱 만들어낸다. 많이 해본 솜씨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듯이 매장 직원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굳은 표정을 짓는다. 신촌의 한 프랜차이즈 커피숍 직원은 “머릿수대로 커피를 안 사고 나눠 먹는 경우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라며 “예전에는 취향대로 커피에 타 먹으라고 우유를 따로 구비해 놨었는데 젊은 손님들이 빈 컵을 달라고 한 뒤 우유만 따라 먹고 가는 경우가 많아 아예 없애 버렸다”고 말했다.

커피숍에서 일하는 친구를 졸라 무료 커피 쿠폰에 도장 10개를 한꺼번에 찍곤 하는 대학생 김모(22)씨도 있다. 물론 친한 친구가 매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하다. 김씨는 “쿠폰 도장 10장이면 커피 1잔이 무료다. 공짜로 10잔은 먹은 것 같다”고 흐뭇해 했다.

이들에게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도리어 “왜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냐”고 되묻고 싶다고 한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짠돌이카페' 운영자 이모씨는 “20, 30대의 월급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데 물가는 그 사이 2배 이상, 전세는 3배 이상 뛰었으니 소비 규모를 현실에 맞게 이렇게라도 줄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렇다. 물가는 비싼데, 젊은이들의 수입은 마이너스가 되기 일쑤다. 사회에 발을 내딛기도 전에 빚더미에 깔려 시작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최근 취업포털 잡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올해 대학 졸업생(1,095명) 중 58.4%(639명)가 빚을 진 채 졸업했다. 평균 부채는 무려 1,321만원. 그러니까 대학생 10명 중 6명은 1,300만원이 넘는 빚을 껴안고 무방비 상태로 사회에 내던져지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러니 널리고 깔린 커피숍 중 일부를 도서관처럼 점유하고, 돈을 아끼기 위해 남이 놓고 간 커피잔을 내 것인 냥 갖고 오는 것쯤은 이해해 달라는 게 이들의 얘기다.

학교와 직장에선...

장소를 옮겨보자. 이곳은 서울의 한 사립대 강의실이다. 이과생 김모(23)씨가 원서로 된 전공 서적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서점에 가서 샀다면 10만원이 넘었을 책이지만 김씨는 일찌감치 강의 계획표를 보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덕에 책값을 아낄 수 있었다. 문제는 2주 후. 대기자가 없으면 6주까지 연장이 가능하지만 1주일 만에 예약자가 5명으로 늘었다. 김씨는 “이번 학기 내내 연체를 할 생각”이라며 “하루 연체료가 100원이라 석 달을 반납하지 않아도 1만2,000원 정도밖에 안 든다”고 말했다. 연체로 인한 찝찝함 보다는 책값의 10%로 한 학기를 무사히 보냈다는 안도감이 김씨에겐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전형적인 모럴 해저드이지만, 궁핍 앞에 양심은 호사처럼 느껴졌다.

다른 대학교의 스터디룸. 짬을 내서 인터넷으로 영어 강의를 듣고 있는 이주희(24)씨는 하루도 빠짐 없이 이 토익강의를 듣고 있다. 16만9,000원이나 하는 수강비의 본전을 뽑으려는 목적을 넘어 수강비를 아예 돌려받기 위함이다. 이씨는 “인터넷으로 EBS 토익 목표점수 환급반 수업을 듣고 있는데, 출석과 과제를 100%하고, 평가시험을 치르면 나중에 수강비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요즘 돈 없는 대학생과 직장인 등을 대상으로 일정기간 출석을 하고, 과제를 잘 수행하면 수강료의 일부 또는 전액을 돌려주는 학원들이 있는데 이씨도 그런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는 것. 이 밖에 상당수 외국어 학원들은 이씨 같은 알뜰족들을 위해 조기 등록 시 1만원 할인, 친구와 등록 시 2만~3만원 할인 등의 이벤트를 상시 열고 있다.

취업 준비생 보단 여건이 좀 나은 직장인들이라고 해서 흥청망청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회사에 다닌다고 해도 카드값, 집 관리비, 교통비, 식비 등을 제하면 남는 건 별로 없다.

그래서 직장인 장모(25)씨는 출퇴근길 지하철 역에서 받아 챙긴 것들로 생필품을 충당한다. 물티슈부터 포스트잇, 공책, 펜, 치약까지 꽤 쓸만한 게 많기 때문. 장씨는 “회사가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중구 시청 근처에 있다 보니 나눠 주는 물품의 양도 많고 종류도 다양하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가능한 모든 것을 직장에서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 수원에 사는 한모(28)씨는 회사 셔틀버스로 출퇴근을 하고 아침, 점심, 저녁 삼시세끼를 구내 식당에서 먹는다. 한씨는 “자취를 하기 때문에 집에서 밥이나 반찬을 해 먹기가 힘들고, 생활비만 더 들기 때문에 회사에서 최대한 식사를 한다”며 “약속 등으로 식당에서 밥을 못 먹으면 포장을 해서라도 나간다. 그렇게 한 달을 살면 최소 35만원은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할인 프로그램 등을 적극 활용하는 것은 각자의 경제 한도와 허용 범위 내에서 소비활동을 즐기는 행위 중 하나”라며 “특히 요즘 청년들은 취업 등 많은 문제에서 압박을 받고 있어서 과하게 돈을 쓸 수가 없고, 그에 따라 좀 더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고 설명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김진주기자 pearlkim72@hk.co.kr

김정화 인턴기자(이화여대 중어중문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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