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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율 높았던 천연두, 완전히 박멸된 첫번째 전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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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율 높았던 천연두, 완전히 박멸된 첫번째 전염병

입력
2015.07.12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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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전염병 천연두, 日서 백신 얻고 기술 전수받아

사설 우두국 설치 종두법 실시, 조선 정부는 국가 사업으로 보급

상처만 남은 메르스, 초기 심각성 오판해 정부 우왕좌왕

35명 숨진 후에야 법정 감염병 지정, 유가족·격리자 등 국민 고통 커

19세기 후반까지도 한반도에서 아주 무서운 역병이었던 천연두는 1977년 10월 26일 소말리아의 마지막 환자를 끝으로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해 공식적으로 박멸한 것으로 선언되었다. 천연두는 백신의 보급으로 완전히 박멸된 첫 번째 전염병이고, 요즘 한국의 의대에서도 이에 관해서는 배우지 않는다고 한다. 16세기에 스페인 식민주의자 군인 코르테즈가 단지 550명의 부하를 끌고서 아즈텍 제국을 멸망시킬 당시에 코르테즈가 천연두에 걸려 죽은 군인의 시체를 이용해서 그 이전에는 전혀 천연두를 앓아 보지 않아 면역성이 없던 아즈텍 사람들을 감염시켜 죽게 만들었다는 것은 아주 끔찍한 얘기다.

천연두는 일본 한자어다. 일제 강점기를 통해서 ‘천연두’로 고정되기 전에는 두창(痘瘡)이라고 불렸다. 두(痘)는 형성자인데, 이 때 두(豆)는 기본적으로 소리를 나타내는 것이지만, 부스럼의 크기가 콩만하다는 뜻을 갖는다. 영어명 ‘smallpox’는 직역하면 ‘작은 부스럼’이란 뜻인데, 여기서 작다는 것은 매독에 비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smallpox’란 이름의 어원은 수두를 작은 마마라고 부르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천연두는 조선 시대 후기 만연했던 여러 가지 전염병 중에서도 감염률과 치사율이 매우 높았고, 낫더라도 흉한 곰보 자국을 남겼기 때문에 무속적 마인드에서는 마마(??)라고 높여 부르기도 했다. 마마라는 말은 중국어로 천화(天花)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원리에서 만들어진 듯하다. 두창이 천연두로 바뀌어 불리게 된 것에는 전통 한의학을 근대 서양 의학이 대체한 사정과 또 일제 강점기를 통해 근대 의료 체계가 한반도에 정착한 사정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 종두법 배워 온 지석영

지석영(池錫永ㆍ1855~1935년)은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종두법을 보급한 인물이다. 두창 백신을 접종하는 종두법을 지석영은 1879년에 부산에 내려가 일본 해군 소속의 병원에서 일본 사람들로부터 배웠다. 의사학자 황상익의 고증에 의하면, 지석영의 첫 우두 시술 날짜는 1879년 12월에서 1880년 2월쯤 사이라고 한다. 지석영은 충주 처가에서 두 살 난 처남에게 종두술을 시술해서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일화는 우두법 발견자인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가 1796년에 자기 아들에게 우두법을 테스트해 보았다는 유명한 얘기를 상기시키는데, 사실은 자기 아들이 아니라 정원사의 아들인 8세 난 핍스란 소년이었다고 한다.

지석영이 우두법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그의 스승인 박영선을 통해서였는데 박영선은 강화도 수호조약 직후인 1876년 수신사 김기수의 의관 및 통역관으로 일본에 가서 서양에서 전래된 우두술에 의해서 효과적으로 두창을 예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지석영은 1880년에 사설 우두국을 설치하여 종두법을 보급하였고, 김홍집이 수신사로 일본에 갈 때 수행원으로 따라가서 우두술과 관련된 모든 지식과 기술을 습득했다.

1876년 개항 이후 종두술을 익히고 시술한 사람은 지석영 이외에도 다른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현재 남은 문헌으로 보아서 당시에 지석영의 명망이 상당히 높았던 것은 틀림없으며, 또 1920년대 후반 이후에 일제가 “조선에 종두 실시한 은인의 공적을 표창”하면서 대대적으로 지석영을 띄워주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남았던 것으로 보인다.

의사학자 신동원에 의하면, 서양 근대의학의 도입은 조선의 근대화 노력과 주변 제국주의 열강의 세력 확산이라는 두 가지 역사적 힘이 맞부딪힌 공간에서 이뤄진 것이며, 특히 종두법과 같은 경우에는, 먼저 근대화를 이룬 일본의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제국주의적 야심을 완화시키는 효과를 보여줄 수 있었다고 한다. 즉, 부산 제생의원의 일본인 의사가 지석영에게 흔쾌히 우두 백신을 나눠준 것이나, 일본에 간 지석영이 우두법에 관한 최신 기술 일체를 전수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한다.

조선보다 못한 21세기 한국 메르스 대응

온 국민을 패닉으로 몰아넣었던 메르스는 50일이 지난 지금 기세가 완전히 꺾인 듯 보인다. 사망자는 나오고 있지만 추가 확진자는 생기지 않고 있다. 메르스 때문에 취소나 연기되었던 행사들이 다시 열리고 있는가 하면, 사망자 유가족들과 격리자들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의료기관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들어갔다.

사스, 조류독감, 광우병 그리고 돼지독감(신종 플루)등은 지난 몇 년 동안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전염병들인데 이번에 메르스가 창궐하기 전까지는 다행스럽게도 한국 사회에 실질적으로 큰 피해를 입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 메르스는 경제에 나쁜 영향을 끼쳤고, 무엇보다 사회적-심리적으로 한국 사회 전체에 큰 상흔을 남겼다. 이 상처 자국은 천연두의 흉한 곰보 자국보다 더 심하달 수 있다. 사망자, 사망자의 유가족, 격리자 및 그 가족이 겪었던 불행과 고통에서도 우리는 메르스의 상흔을 읽을 수 있고, 메르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부모들이나 먹고 살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바깥을 나가서는 재채기를 하는 사람은 무조건 기겁하며 피해야만 했던 대다수 국민들의 기억에서도 메르스의 상흔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지난 6일에 메르스가 제4군 감염병으로 지정되었다는 것이다. 35명이 죽고 난 다음에야 메르스는 국가가 관리하는 법정 감염병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지정되기 이전까지는 메르스와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거나 병원을 폐쇄하고 감염된 이들을 강제로 격리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전혀 없었다는 얘기다. 피상적으로 비교해서 말하자면, 2010년대의 대한민국 국가는 19세기 말 조선이나 대한제국보다도 못하다. 이미 1880년대 초의 조선 정부는 당시로서 커다란 국가적, 사회적 문제인 두창을 예방하고 특히 아이들을 두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종두법에 대해 논의하면서 조선 팔도에 우두술을 국가 사업으로 보급했다.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고 있듯이,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국민 전체를 패닉에 빠뜨리게 한 일차적 책임은 국가 내지는 행정부가 져야 한다. 정부는 메르스의 심각성에 대해서 연거푸 오판했고, 세월호 사태에서와 마찬가지로 초기 황금 시기에 손을 놓고 있었으며, 계속해서 타이밍을 놓친 채 항상 두세 발 늦게 대응했다. 게다가 늑장을 부린 주제에 온갖 변명과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만 보여주었다.

“병원이 병을 만든다”는 통찰 되새겨야

하지만 내가 보기에 더 큰 문제들이 있다. 우선, 이번 메르스 사태 초기에 패닉 상태가 벌어졌을 때 사회의 집단적 이성이 작동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곱씹어 봐야 한다. 냉정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기는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과 전문가도 마찬가지였다. 더 근본적으로는, 이번 기회에 우리 각자가 병과 의료 체계 전체에 대해서 각자 나름의 성찰을 해야 한다. 이런 성찰은 병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 자체와 몸과 마음의 건강에 대해서도 이뤄져야 한다.

여기서 “병원이 병을 만든다”는 이반 일리치의 통찰적인 명제를 떠올리게 된다. 일리치는 세 종류의 병원병, 즉 임상적 병원병, 사회적 병원병, 문화적 병원병에 대해서 말했다. 임상적 병원병은 의사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의미에서의 치료 과정 중에 생긴 문제들을 뜻한다. 사회적 병원병은 질병을 치료한다는 약제나 치료기술이 생산되고 활용되는 과정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이다. 문화적 병원병은 인간이 고통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단편적이고 환원주의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는 문제를 가리킨다. 이번에 이 세 가지 병을 우리는 골고루 다 겪었다.

그러니 이번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서 국가 및 정부를 질책하는 것에 멈춰서는 안 된다. 그러한 질책은 자칫 잘못하면 근대 보건의료체제의 통치술과 관련된 국가의 권력만을 비대하게 하는 쪽으로 잘못 흘러가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박근혜정부는 삼성병원에 원격 의료라는 선물을 주었다. 돈 없는 이는 죽으라는 식의 의료 민영화라는 사회적 바이러스는 정부와 독점 재벌의 짝짜꿍에 의해서 창궐할 조짐을 보인다.

조선 최초의 의학교 교장이었던 지석영은 이토 히로부미가 살아있을 때에는 이토가 서울에 올 때 영접 행사에 의학교 학생을 동원하려 했고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에는 이토 히로부미 추도회에서 추도문을 낭독했다. 반면, 이반 일리치는 종양 치료를 거부하고 진통제로 연명하다가 사망했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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