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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이 된 추억의 물건을 수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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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이 된 추억의 물건을 수집하는 사람들

입력
2017.05.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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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푸는 거죠.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사주지 않으셨던 것들을 제 돈으로 사면서요.”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음성욱(36)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골동품’ 수집가다. 주 종목은 철 지난 휴대폰과 추억 속 게임팩∙가정용게임기(콘솔)∙전자오락실용 게임기 같은 옛날 게임기. 그동안 수집한 중고게임기들을 모두 합치면 2억원에 이른다. 휴대폰의 경우 지난해 기준으로 2만대 가량 모았다가 다 처분하고 지금은 아끼는 200~300대만 남겼다.

음씨처럼 추억의 물건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네이버의 중고물품 거래 카페인 중고나라에서 옛날 책, 오래된 장난감 등을 거래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른바 ‘과거지향적 소비’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의 고전 게임 커뮤니티 ‘구닥동’에서 1년에 두 번 개최하는 레트로 게임 장터는 늘 성황을 이뤄 벌써 12회째를 맞았다. 매 번 적게는 600~700명, 많게는 2,000명 넘게 참가한다.

남들에게 철 지난 고물, 나한테는 값비싼 보물

음성욱씨의 보물들. 한때 2만여개 이상 모으기도 했다. 음성욱씨 제공
음성욱씨의 보물들. 한때 2만여개 이상 모으기도 했다. 음성욱씨 제공

음씨는 중고 전자제품 수출업체를 운영하며 자연스럽게 중고 기기들과 친해졌다. 그 중에서도 그의 감수성을 가장 많이 자극한 것은 휴대폰이다. 학창시절 들고 다니던 휴대폰을 보면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4년간 모은 휴대폰이 차고 넘쳐 사무실, 집 등 모든 공간을 활용해 보관해야 했다. 음씨가 갖고 있는 휴대폰 중 가장 비싼 물건은 거래가격이 1,000만원에 이른다. 그는 “한정판이나 최초∙최후 같은 타이틀이 붙는 물건일수록 값어치가 높다”고 귀띔했다.

음씨는 2년 전부터 오래된 게임기도 수집하고 있다. 네이버 카페 레트로 공구&공제
음씨는 2년 전부터 오래된 게임기도 수집하고 있다. 네이버 카페 레트로 공구&공제

음씨가 휴대폰으로 수집의 ‘정점’을 찍고 눈을 돌린 새로운 세계는 오래된 게임기다. 그런데 갖고 있는 물건 중 가장 비싼 것은 게임기가 아니라 200만원짜리 브라운관 모니터이다. 요즘 TV들이나 컴퓨터(PC)용 모니터가 모두 액정화면(LCD)으로 바뀌면서 1990년대 이전에 주로 사용하던 브라운관 TV나 모니터는 찾기 힘들다. 그 바람에 가격도 덩달아 뛰었다. 음씨는 “고전 게임은 브라운관 모니터로 해야 제 맛”이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고전 게임 세계에 발을 디딘 그는 네이버의 ‘레트로 공구&공제’ 카페까지 운영하며 아예 취미전도사로 나섰다. 지난해 12월 개설해 올해 2월부터 받은 카페 회원 수는 두 달 만에 1,300명을 넘었다. 그는 무역을 하며 얻은 경험을 발판 삼아 회원들이 중고 게임기를 쉽게 구하도록 돕고 있다. 회원들도 서로 해외 직접 구매를 돕고 실제 만남을 갖는 등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카페를 통해 한 사람이라도 더 낡음의 미학을 누렸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요술봉아 지친 심신을 달래주렴

한때 김선혜씨의 정신적 지주였던 웨딩피치 요술봉들. 웨딩피치 크리스탈 요술봉(가운데)은 50만원을 주고 샀다. 김선혜씨 제공
한때 김선혜씨의 정신적 지주였던 웨딩피치 요술봉들. 웨딩피치 크리스탈 요술봉(가운데)은 50만원을 주고 샀다. 김선혜씨 제공

“원하는걸 손에 쥐었을 때 하루 종일 설레죠. 데이트 전 기분처럼요.”

직장인 김선혜(가명∙27)씨는 5년 전부터 취미 삼아 ‘고전 완구’를 모은다. 오래 전 출시 돼 손때 묻고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장난감이라면 모두 고전 완구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는 추억을 떠올리며 일상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점을 고전 완구의 매력으로 꼽았다.

김씨는 어릴 적부터 애니메이션을 좋아했지만 본격적으로 추억의 장난감을 모은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다. 그 중에서도 요술봉을 주로 모았다. 만화 ‘웨딩피치’의 요술봉을 구하기 위해 2년간 발품을 팔았다. 어렵게 구한 크리스탈 요술봉 가격은 50만원. 가격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만큼 만족도는 높다. 김씨는 “영롱하게 반짝이는 요술봉에 집중하면 잡념이 사라진다”며 “소중하게 다루고 싶은 보물”이라고 고백했다.

음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LP의 감촉

LP로 가득한 한광훈씨 서재. 그에게 LP 수집은 습관이 됐다. 한광훈씨 제공
LP로 가득한 한광훈씨 서재. 그에게 LP 수집은 습관이 됐다. 한광훈씨 제공

직장인 한광훈(가명∙48)씨에게 ‘레코드판’(LP) 수집은 습관이다. 어릴 때부터 LP를 수집한 그는 결혼 후 모두 처분했다가 10년 전부터 다시 모으고 있다. 그의 방에 꽂혀 있는 LP는 4,000장이 넘는다. 그 중 절반 이상이 아마존, 이베이 등 미국의 온라인 쇼핑 사이트를 통해 구한 중고품들이다.

한씨가 LP를 모으는 이유는 소장 가치 때문이다. 그는 “평소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음원을 재생해 주는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악을 듣지만 무심코 듣고 흘려 보내는 느낌”이라며 “하지만 LP는 손에 쥐면 음악을 더 소중하게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보물찾기를 계속 할 생각이다.

사람들의 오래된 물품 수집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들어 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온라인∙비대면 거래가 활성화된 현재에 대한 반작용”을 우선 꼽았다. 음원 스트리밍 같은 무형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신 물건을 직접 소유하면서 색다른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추억 쇼핑’을 부추기기도 한다. 최 교수는 “오래된 물품 수집은 현재에 대한 불만족이 바탕에 깔려있다”며 “앞날에 대한 불안이 커질수록 과거의 좋았던 순간이나 추억에 기대려는 심리가 작동한다”고 봤다.

여기에는 과거에 대한 보상심리도 작용한다. 2030 세대들이 경제활동을 하고 구매력이 생기면 어릴 적에 사지 못한 것들을 사들이며 적극적으로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다. 최 교수는 “구매력이 생겨 눈치 보지 않고 소비할 수 있게 된 젊은 세대는 추억의 물건을 모으며 좋았던 과거를 떠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진은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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