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태성 기자

등록 : 2017.08.11 04:40
수정 : 2017.08.11 04:40

[북리뷰] 과학자들이여 자성하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무기가 된다

노벨상 수상자 마스카와 도시히데 '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

등록 : 2017.08.11 04:40
수정 : 2017.08.11 04:40

노벨 물리학상 日 마스카와

어린시절 소이탄 피폭 등 경험

헌법수호·평화운동에 앞장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

원자폭탄 위력을 나타내는 그림. 미국은 나치보다 앞서 원폭을 개발하기 위해 맨해튼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과학자들은 나치가 패망하자 원폭의 파괴적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국제관리 하에 두자고 제안했으나, 미국은 이를 거절했다. 과학자들이 반핵운동에 나서게 되는 계기였다. 동아시아 제공

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

마스카와 도시히데 지음ㆍ김범수 옮김

동아시아 발행ㆍ208쪽ㆍ9,500원

과학판이 시끌시끌하다. 탈원전을 둘러싼 논란에 박기영 교수를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임명한 것이 적당한가를 둘러싼 논쟁 때문이다. ‘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는 그런 의미에서 타이밍이 좋다. 저자는 마스카와 도시히데(77) 교토대 교수 겸 소립자우주기원연구기구장.

아마 2008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기억하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쿼크를 뭘 어떻게 했다는 물리학에서의 업적보다는, 일본에서 학위 받고 일본에서만 연구해 온 순수 일본 국내파 물리학자로 영어 한마디 못하는데 노벨상을 받았다는 점이 더 화제가 됐다. 노벨상으로 가는 글로벌 지름길에 늘 목말라 있는, 미국 석·박사 학위 없으면 취직도 어려운, 일본을 우습게 알기로는 세계 제일인 한국으로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책은 이런 세간의 유명세와 결을 좀 달리한다. 일본의 대표적 물리학자로서 노벨상 수상 연설 때 전쟁에 반대한다는 ‘정치적 언동’을 왜 서슴지 않았는지, 또 군대보유와 전쟁할 권리를 부인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평화헌법 9조’를 지키기 위해 ‘9조 과학자 모임’을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왜 못마땅한지 설명해 나간다. ‘과학자라면 국익을 위해 조용히 실험실에서 연구나 할 일이지 왜 시끄럽게 구느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국익에 봉사하는 순수한 과학자’에 대한 반론이다.

사실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얘기들은 많다. 과학 연구의 거대화로 인해 과학자 개개인은 자신이 뭘 연구하는지 모른다. 거대 연구를 위해 거대 자본을 끌어들이려다 보니 연구 윤리면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군수용·민수용 기술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으니 ‘평화로운 과학기술’이란 말도 모호해진다. 이런 얘기를 ‘과학의 블랙박스화’ ‘더블 유스(Double Use)’ 같은 용어로 차분하게 정리해 나간다.

1957년 핵무기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세계 과학자들이 한데 모인 퍼그워시 회의. 이 회의는 핵무기의 위험성을 널리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노별평화상을 받는다. 동아시아 제공

그럼에도 책은 저자의 매력에 기대 여러 가지 장점을 발산한다.

우선 일흔 넘은 노 교수는 옛 이야기체를 구사했다. 해서 반론이되 격하지 않다. 저자는 다섯 살 때 나고야 고향집에 지붕을 뚫고 안방에 떨어진 미군의 소이탄 얘기를 꺼낸다. 불발되는 바람에 살았다. 아직도 부모님이 이끄는 리어카를 타고 불타는 나고야 시내를 돌아다녔던 기억이 생생하다. 오늘날 과학 연구의 현실을 일러 주기 위해 소립자 관련 5쪽짜리 간단한 논문 하나 쓰는 데 1,000명의 연구자가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풍경도 슬쩍 전해 준다.

젠체하지 않는 태도도 좋다. 저자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이란 주제를 두고 도전해 온다면 적극적으로 토론할 의향은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평화운동을 두고 “선두에 나서고 싶다거나 하는 그런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저자는 “과학자는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에 신경 쓰기보다 자신의 연구에 몰두하는 쪽을 몇 배는 더 즐겁게 여기는 유형의 인간”이라 익살스럽게 비꼬더니, “나도 귀찮은 것은 놔 두고 내 연구를 생각할 때가 가장 즐겁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오랜 시간 제자들을 길러 낸 따뜻한 시선도 잊지 않는다. 2015년 도쿄대의 군사연구금지 원칙 폐지 문제를 두고 한 차례 거센 논란이 일었다. 다른 정치·경제 이슈도 아니고 과학 연구자에 직결된 이런 이슈조차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과학자들을 두고 “볼 때마다 엉덩이를 때려 주고 싶다”고 으르렁대면서도, 한편으로는 과학자만 야단칠 게 아니라 “그들을 생활인으로 키우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감싸 주기도 한다.

“탈원전 해도 원자력 연구 계속”

원전에 대한 입장도 주목할 만

2008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 '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라는 책에서 물리학자가 왜 평화운동을 벌이느냐에 대한 설명을 내놨다. 동아시아 제공

저자 덕에 일본의 평화운동을 조금 더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좋다. 사실 한국은 일본의 피폭국 행세를 못마땅해한다. ‘제국주의 침략 만행을 저지른 주제에, 만행에 사과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주제에, 피해자인 것처럼 징징대지 말라’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나가사키를 방문했을 때 혹시라도 애도와 사과의 뜻을 밝힐까 봐, 미국 못지않게 촉각을 곤두세웠던 게 우리나라였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고통이 가장 강렬한 게 인지상정이다. 저자가 평화운동에 나선 것은 어릴 적 경험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승이었던 입자물리학자 사카타 쇼이치 덕분이기도 하다. 사카타는 수많은 살상 무기가 난무하는 전쟁을 겪은 뒤 “실험실부터 민주화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핵무기 반대를 위해 전 세계 과학자들이 참여해 만든 ‘퍼그워시 회의’에도 참여했다. 나고야대 물리연구실을 이끌면서 천명한 원칙은 “과학자 이전에 인간이 되어라”였다. 우리로서야 성에 안 찰지 몰라도, 우경화를 두고 자꾸 비판만 하는 것보다는 너희들에게도 이로울 게 없다고 설득하는 방식이면 어떨까 궁금해진다.

원전에 대한 의견에서도 저자는 치우치지 않는다. 물론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해서는 경제성을 위해 안전성을 희생했다며 혹독하게 비판한다. 반면, 그렇다고 풍력 같은 대체에너지가 현재까지 안정적인 대안인 것은 아니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어쨌거나 지금도 원전은 돌아가고 있고, 거기서 사용 후 핵연료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저자는 그렇기에 최종적으로 원전을 포기하기로 결정한다 해도 원자력 연구에는 많은 자금과 우수한 인재가 우선적으로 투입되어야 한다고 강조해 뒀다. 탈원전 논의가 한창인 우리가 한번 들여다볼 얘기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지난 6월 영구정지된 우리나라 최초의 원전 고리1호기. 탈원전 흐름의 신호탄이 될 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동아시아 제공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일보 페이스북

한국일보 트위터

한국일보닷컴 전체기사 RSS

RSS

한국일보닷컴 모바일 앱 다운받기

앱스토어구글스토어

한국일보닷컴 서비스 전체보기

Go

뉴스 NOW

이전

  • 종합
  • 정치
  • 사회
  • 경제
  • 국제
  • 문화
  • 연예
  • 라이프
  • 스포츠

다음

오늘의 사진

전국지자체평가

많이 본 뉴스

  • 1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