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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 시비, 가볍게 툭 쳐도 죽음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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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 시비, 가볍게 툭 쳐도 죽음 부를 수 있다

입력
2015.12.2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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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해서 휘두른 주먹에 그만

음주 뒤에는 신체 통제능력 무뎌져

살짝 때려도 목 과도하게 회전

뇌 감싸는 지주막하 출혈로 사망도

멱살만 잡고 흔들어도 위험

가해지는 압박 높아져 뇌 손상 우려

상처 드러나지 않아 치료 놓치기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 10월 18일 새벽 서울 화곡동의 한 도로에서 A(27)씨는 “왜 누나에게 짜증을 내냐”며 매형 김모(40)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두 차례 때렸다. 전날 밤 가족 모임에 참석해 함께 술을 마신 후 노래방에 갔다 나온 직후였다. 중심을 잃고 쓰러진 김씨는 곧 일어났지만 다시 의식을 잃어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겨졌고, 나흘 뒤 끝내 숨졌다. 경찰은 A씨 가족들이 김씨의 사망은 지병 때문이라고 주장함에 따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했다. 그러나 국과수는 “사인은 외상성 내(內)지주막하 출혈”이라는 부검 결과를 내놓았다. 쉽게 말해 A씨가 욱해서 휘두른 주먹으로 인해 김씨 머리에 뇌출혈이 생겨 숨졌다는 것이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17일 A씨를 폭행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 5월 15일에는 서울 응암동의 한 식당 앞에서 정모(65)씨가 동네 지인 B(65)씨와 술을 마시다 언쟁을 했다. 이들은 말다툼 끝에 식당 바깥으로 나와 몸싸움을 벌였고, 멱살을 잡고 흔들다 동시에 넘어졌다. 목격자들은 “두 사람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같이 쓰러지는 듯 보였는데 머리 부분을 부딪힌 B씨가 죽을 정도인지는 몰랐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B씨는 이틀 뒤 병원에서 사망했다. 국과수는 이번에도 “뇌의 광범위한 부종 및 다발성 지주막하 출혈 등 뇌 손상이 확인했다”는 소견을 내놨다. 멱살을 잡고 흔드는 과정에서 머리 속에 출혈이 발생했고, 넘어지면서 뇌가 충격을 받아 사망했다는 의미다. 서울서부지법은 9월 폭행치사 혐의로 기소된 정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음주 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는 물리적 가해가 죽음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불렀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술을 마신 뒤에는 신체 반응이 느려져 폭행을 당할 경우 가벼운 충격에도 혈관이 쉽게 파열돼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음주 폭행은 대부분 지주막하 출혈과 연관돼 있다. 지주막하는 뇌를 감싸고 있는 뇌막 중 가장 안쪽에 있는 연막과 중간 지주막 사이의 비교적 넓은 공간으로 뇌에서 출혈이 생기면 이 곳부터 피가 스며 들게 된다. 특히 음주 상태에서는 가벼운 폭행이 지주막하 출혈이나 뇌진탕으로 이어져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이숭덕 교수는 27일 “술을 먹으면 신체 통제능력이 무뎌져 폭행 강도가 약하더라도 목이 과도하게 회전하면서 지주막하 출혈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척추를 따라 뇌 안으로 연결되는 척추동맥이 무의식 중에 충격을 받으면 목 부분에서 터지기 쉬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음주 후 뇌진탕도 영아가 심하게 흔들렸을 때 뇌가 두개골과 부딪혀 손상을 일으키는 ‘진탕아 증후군(Shaken Baby Syndrome)’과 비슷한 원리로 설명된다. 영아는 신체 구조상 성인에 비해 머리 무게의 비중이 더 높고 근육이 부족해 목을 가누지 못하기 때문에 세게 흔들 경우 뇌 손상이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술에 취한 성인은 사소한 폭행에도 뇌에 가해지는 압박이 배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음주자는 의사표현이 불분명하고 상처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탓에 치료 시기를 놓치기 쉬워 치명적 결과를 유발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연말을 맞아 술을 먹고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다투는 ‘주취 폭력’ 사건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음주 상태에서는 뺨을 치는 행위조차도 의식을 잃게 만들 수 있는 만큼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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