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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이 읽으면 100가지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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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이 읽으면 100가지 이야기가 된다”

입력
2018.01.10 15:4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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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솔 소설 ‘보편적 정신’ 출간

“조지 오웰 ‘1984’ 대한 오마주”

전체주의적 생산공장을 묘사

김솔 작가는 “100년 전 인간의 삶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시대와 지역적 특징을 일부러 무시하고 쓴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솔 작가는 “100년 전 인간의 삶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시대와 지역적 특징을 일부러 무시하고 쓴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각각의 책은 각각의 독서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 김솔(45) 작가의 경장편 소설 ‘보편적 정신’(민음사)은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저 유명한 선언을 떠올리게 한다. ‘신비의 붉은 페인트’ 제조 공장의 역사를 그린 이야기는 100명이 읽으면 100가지 줄거리로 요약될 만큼 그로테스크하다. 서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앞뒤 에피소드의 인과성이 상충되거나 선후관계가 뒤바뀌거나, 혹은 전혀 연결고리가 없다. 소설집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 번째’, 장편 ‘너도밤나무 바이러스’에서도 낯설고 기묘한 작법을 선보인 작가는 신작에서 그 특유의 장기를 선보인다.

10일 전화로 만난 김 작가는 “신작은 조지 오웰의 ‘1984’에 대한 오마주”라며 “저의 특장을 담은, 고유한 소설을 선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문지문학상, 김준성문학상,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한 김씨의 본업은 대기업 굴착기 엔지니어. 본업을 십분 발휘해 신작에서 생산 공장의 조직과 운영방식을 정교하게 묘사했다.

소설 속 공장은 세계 시장을 제패한 ‘능력자’로, 공장의 목표에 맞춰 생산과 고용을 자체 조절할 수 있다. 설계된 시스템에 따라 채용과 승진이 결정되며 한번 채용되면 죽을 때까지 고용이 보장된다. 하지만 시스템에 반기를 드는 직원은 삶의 뿌리를 뽑아버린다. 전체주의 사회를 그린 ‘1984’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작가는 “(문학도 시절) 이데올로기를 다룬 소설, 후일담 소설, 개인을 조명하는 소설이 차례로 유행했다. 저는 그보다 사회 시스템과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궁금했고, 자연스럽게 ‘1984’의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저 능력자 공장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동칼로스 왕이 등극하던 1889년에” 태어난 공장 창업주는 먹고 살기 위해 브라질까지 건너갔다 연금술사를 만난다. 스승에게 신비의 붉은 염료 제조술을 5년간 수련 받지만, 그의 실험은 매번 실패하고 스승과 헤어져서도 여전히 실험에 몰두한다. 아내는 실패작을 몰래 내다 파는데 칠하면 망각과 부패를 견디게 해준다는 소문이 돌면서 수요가 급격히 늘고, 아내는 일용 노동자를 끌어 모아 대량생산을 시작한다. 연금술에 빠져 아내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까맣게 잊은 창업주는 하녀와 다시 결혼해 딸과 아들을 하나를 얻는다. 그리고 이 딸이 낳은 딸이 창업주의 유일한 손녀, 붉은 페인트의 제조법을 아는 5인 중 한 명이 된다. 손녀의 사망에서 시작한 소설은 페인트 제조비밀을 지키고, 완벽한 운영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공장의 자가발전상을 다룬다.

작가는 “중세에 연금술은 단순히 납을 금으로 바꾸는 과정이 아니라 인간과 세상을 보는 방식, 소통하는 방식이었다”며 “똑같은 납과 금을 갖고 있지만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납도 금도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누구나 납도 금도 될 가능성이 있다. 소설에서 드러내고 싶었던 점”이라고 덧붙였다.

명쾌하고 기민한 세태소설이 유행하는 요즘 문학계에서 왜 ‘이런 소설’을 쓰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말했다. “한 가지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데에 한계가 있다. 이 쪽 이야기에 맞선 다른 쪽 이야기도 함께 쓰다 보니 시점도, 해석도, 문장도 복잡해지는 것 같다. 생경할 수 있지만 본질을 말하고 싶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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