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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을 수 있을까 걱정말고 손을 뻗자… 꿈은 가까이 있어

입력
2018.05.04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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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주니어 제공
시공주니어 제공

시험 당일 날 일어났는데 시험 공부를 전혀 안 했다든가, 입시에 떨어진다든가, 성인이 된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가끔씩 이런 황당한 악몽을 꾸게 된다. 학창 시절 입시지옥을 통과해온 자들이 겪게 되는 일종의 집단적 정신장애 같은 것이다. 기억 저편에서 뒷덜미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실패와 좌절이라는 악몽은 무의식의 자아를 끈질기게 쫓아다닌다. 그 두려움은 오늘 하루도 치열하게 살아가라는 독촉장이 되기도 한다.

꿈을 갖게 되면 동시에 짊어져야 할 불안도 생기게 마련이다.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부푼 마음 뒤엔 과연 자신이 그 일을 해 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고개를 든다. 때로는 지레 포기해버리기 위해 정당한 이유를 찾아내기도 한다. 나이가 많다, 돈이 없다, 시간이 부족하다, 남들도 다 안 되더라… 나이가 들수록 젊은 날의 도전과 열정은 사라지고 자신이 이미 만들어 놓은 세계 안에서 안주하려는 성향이 강해진다. 누구나 변화와 새로움을 마주하는 것은 힘이 들기 때문이다. 변화 없는 생활은 비록 편안할지는 모르지만 뇌를 늙게 하고 정신의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일단 시작해 보자는 마음으로 조금씩 낯선 길을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그토록 멀게만 보이던 산 정상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성취감과 자신감이라는 깃발을 동시에 뽑아 들고 웃을 수 있다. 더 멀리 보이는 높고 험준한 산들도 오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한 소년이 펜스 바깥에 서서 또래 아이들의 야구 경기를 보고 있다. 소년도 야구 모자를 쓰고 글러브를 끼고 있지만 정작 또래 사이에는 끼지 못한 듯하다. 마침내 소년에게 기회가 왔다. 수비수 자리가 주어졌고 곧 배트를 맞고 날아오른 공이 소년에게 날아온다.

“내가 잡을게!” 자신 있게 외쳤지만 그 순간부터 소년은 공을 잡아야만 한다는 부담감과 공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인다. 소년은 급기야 과대망상에 빠진다. 평평한 운동장에서 갑자기 나무뿌리가 솟아나 발에 걸려 넘어진다. 더 크게 올라온 나무에 우스꽝스럽게 부딪혀 친구들에게 웃음거리가 된다. 부정적인 상상은 연기처럼 모락모락 더 높이 피어 오른다. 공이 마치 지구처럼 커져서 잡기는커녕 공에 깔아뭉개질 것만 같고, 소년은 점점 작아져 함께 달려가는 다른 친구의 발꿈치나 잡게 된다. 이제 공은 소년이 손을 뻗으면 닿을 듯 한 곳까지 날아왔다. 소년은 공을 향해 힘껏 몸을 던진다.

이야기는 소년이 날아오는 공을 잡는 단 몇 초 동안의 상상을 그림만으로 구성한 그림책이다. 환상모험의 장인이라 불리는 작가 데이비드 위즈너는 야구를 통해 순간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마침내 공을 잡아낸 소년의 희열을 보여준다.

내가 잡았어!

데이비드 위즈너 지음

시공주니어 발행∙44쪽∙1만3,000원

한반도에는 다시 한 번 봄이 찾아왔고 어느 때보다 더 큰 희망에 부풀고 있다. 하지만 오래된 망령들이 낙관적인 기대를 가로 막는다. 강대국의 이해관계, 불신과 반목으로 멀어진 세월이 하루아침에 신뢰를 되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천진난만한 아이들처럼 꿈을 꾸어야 한다. 불안을 잠재우는 것은 꿈을 이루기 위한 강한 의지와 뜨거운 열정이 아닌가. 손을 뻗으면 생각보다 가까이 그 꿈이 잡힐지도 모른다.

소윤경 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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