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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럴림픽 컬링 국가대표 “신체적인 장애가 진짜 장애물이 될 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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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럴림픽 컬링 국가대표 “신체적인 장애가 진짜 장애물이 될 순 없어요”

입력
2018.04.0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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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에 출전했던 서순석(가운데) 선수가 지난 2일 경기 이천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에서 차재관(왼쪽), 방민자(오른쪽) 선수와 함께 투구를 준비하고 있다.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에 출전했던 서순석(가운데) 선수가 지난 2일 경기 이천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에서 차재관(왼쪽), 방민자(오른쪽) 선수와 함께 투구를 준비하고 있다.

“좋아요, 라인 좋아. 조금만 더, 굿 샷!. 웨이트만~, 웨이트!”

지난 2일 오후 경기 이천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 컬링장.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매서운 눈빛이 얼음판에 쏟아졌다. 빙판 유지를 위해 10.8도로 조절된 실내 공기도 금세 달아올랐다. 공식 경기가 아닌 훈련이었지만 이들에게 느슨함은 없었다. 2018 평창 패럴림픽 휠체어컬링 4강 주역들의 훈련은 실전을 방불케 했다.

“휴우~. 허탈하고 비참합니다. 지금도 뭐라고 할 말이 없어요.”

서울시청 소속 휠체어컬링팀 가운데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방민자(56), 서순석(47), 차재관(46) 선수는 메달을 놓친 아쉬움을 아직도 잊지 못했다. 국가대표 해단식 이후, 소속팀으로 돌아온 이들은 다음 대회 준비에 들어갔지만 안타까움은 여전한 듯 보였다. 지난 18일 폐막한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 우리나라 휠체어컬링 국가대표팀은 예선 1위로 4강에 올랐지만 노르웨이와 캐나다 벽을 넘지 못하고 사상 첫 메달 획득엔 실패했다.

서울시청 휠체어컬링팀 선수들이 지난 2일 경기 이천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에서 훈련하고 있다.
서울시청 휠체어컬링팀 선수들이 지난 2일 경기 이천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에서 훈련하고 있다.

“우리를 믿었던 다른 장애인들에게 뭔가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못했어요. 이 부분이 가장 죄송했습니다. 적어도 얼음판 위에서 만큼은 우리도 비장애인들처럼 똑같이 할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켜 주고 싶었거든요.” 휠체어컬링 국가대표팀에서 홍일점으로 뛰었던 방민자 선수는 응원해준 다른 장애인들을 걱정했다. 지난 1993년 여름, 강원도로 휴가를 떠났던 방 선수는 돌아오는 길에 예기치 못한 차량 전복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살아왔던 일상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결혼식까지 취소됐다. “제가 장애인이란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만 10년 넘게 걸렸어요.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거의 집안에서 두문불출 했어요. 결국, 바깥 세상으로 나오는 계기는 동생이 찾아줬지만 말입니다.” 동생 권유로 다녔던 장애인복지관의 지인들과 함께 접한 ‘론볼’(잔디에서 공을 굴려 표적에 가까이 보내는 스포츠)이 그에게 2004년부터 본격적인 컬링 선수로 뛰게 된 계기를 만들어줬다.

서울시청 휠체어컬링팀 선수들이 지난 2일 경기 이천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에서 김석현 코치와 함께 몸을 풀고 있다.
서울시청 휠체어컬링팀 선수들이 지난 2일 경기 이천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에서 김석현 코치와 함께 몸을 풀고 있다.

이번 평창 패럴림픽에서 주장을 맡았던 서순석 선수도 다른 장애인들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책임감이 들었어요.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이 우리들을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으로 대하는 함성과 시선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좋은 성적으로 보답했으면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까지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아깝게 됐습니다.” 1993년 뺑소니 교통사고로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서 선수는 정보처리기능사, 웹마스터 등 각종 자격증을 땄지만 장애인에게 취업은 ‘그림의 떡’이었다. 우울증은 덤으로 따라왔다. “9년 전, 친구가 컬링을 소개해주지 않았다면 제 인생은 어떻게 됐을지 몰라요. 이 때부터 저에게 주어진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컬링이 제 인생의 ‘힐링’을 갖다 준 셈입니다.” 장애인들의 탈출구는 본인들이 직접 찾아야 한다는 게 서 선수의 생각이다.

서울시청 휠체어컬링팀 소속 방민자(왼쪽부터), 서순석, 민병석 선수가 지난 2일 경기 이천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 훈련원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서울시청 휠체어컬링팀 소속 방민자(왼쪽부터), 서순석, 민병석 선수가 지난 2일 경기 이천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 훈련원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차재관 선수의 생각도 비슷했다. 신체의 불편함이 장애인 전체 인생의 장애물로 굳어져선 안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 하반신 장애인들은 호스로 소변을 처리하는 것부터 부끄러워하면서 아예 밖에 나오질 않아요. 전혀 창피해 할 일이 아닌데도 말이죠. 이렇게 폐쇄적인 작은 틀에서 먼저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신감이 생기거든요.” 자신을 있는 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고향인 경남 함양군 마천면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부모의 농사일을 돕던 중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서 선수가 휠체어컬링 국가대표까지 올라선 출발점이기도 했다. “갑자기 비장애인에서 장애인으로 바뀐 자신을 받아들이기가 쉽진 않아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래도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입니다.”

방민자(가운데 앞) 선수가 민병석(왼쪽 첫번째), 차재관 선수 등과 함께 투구를 하고 있다.
방민자(가운데 앞) 선수가 민병석(왼쪽 첫번째), 차재관 선수 등과 함께 투구를 하고 있다.

자신들의 가시밭길 여정을 소개한 휠체어컬링 국가대표 3총사는 주어진 과제도 잊지 않았다. “이번 평창 패럴림픽에서 국민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았어요. 이젠 우리가 보답할 차례입니다. 다음 패럴림픽 시상대에 올라서 꼭 애국가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꿈과 희망을 심어줘야 하니까요.” 이들의 시선은 이미 2022년 베이징 패럴림픽에 정조준됐다. 이천=글ㆍ사진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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