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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혼혈 미스일본, 논쟁에 당당함으로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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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혼혈 미스일본, 논쟁에 당당함으로 맞서다

입력
2015.03.3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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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미인대회 1위 미야모토 아리아나, 국가 대표로 미스 유니버스 출전

폐쇄성 강한 일본사회서 논쟁 촉발… 다문화주의 정착 계기될 지 주목

지난 12일 미스 유니버스 일본 대표로 뽑힌 혼혈 1세대 미야모토 아리아나. 미야모토 아리아나 페이스북 사진
지난 12일 미스 유니버스 일본 대표로 뽑힌 혼혈 1세대 미야모토 아리아나. 미야모토 아리아나 페이스북 사진

“검은 피부 혼혈여성이 일본을 대표하는 미인이라고?”“클레오파트라도 아프리카계였다! 법적으로 일본인이면 그만이다!”“일본대표 뽑혀놓고 차별 받았다고 떠들어? 복수심에 일본대표 됐냐?”

최근 일본 미인대회 사상 처음으로 흑인 혼혈여성이 1등을 차지하면서 일본사회 내 논쟁이 뜨겁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흑인특유의 곱슬머리를 가져 일반적인 일본인과 거리가 있음에도 내년 1월 세계 미인대회인 미스 유니버스에 출전할 국가대표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파장은 단순한 인종차별 논란을 넘어 일본사회의 폐쇄성을 일본인 스스로 되짚는 자성의 계기도 되고 있어 주목된다.

미야모토 아리아나(20)씨는 아버지가 미국국적의 흑인, 어머니가 일본인인 혼혈이다. 다만 자신은 큐슈(九州)의 나가사키(長崎)에서 나고 자랐다. 국제 미인대회는 다양한 인종과 민족 출신 미인들이 자국의 여성미를 겨루는 성격이 있어 파격인 셈이다. 30일 일본의 SNS(사회관계망 서비스)에선 연일 “하프(혼혈인)가 일본을 대표하는건 모순”이란 주장부터 “일본여성의 상징인 하얀 피부에 맞지 않으니 왕관을 반납하라”는 요구까지 설전이 치열하다. 특히 미야모토가 CNN과의 인터뷰에서 “인구의 98%가 같은 인종인 일본에서 항상 눈에 띄는 존재였고 어렸을 때는 다르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며 “학교에서 아이들이 내게 쓰레기를 던지곤 했고 인종차별적 비방도 당했다”고 토로한 게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자신을 어필하려 스토리를 꾸미고 있다는 등 험담이 쏟아졌다.

심각성은 혐한(嫌韓)정서까지 건드린다는 점이다. 미야모토의 언행을 2012년 미스 인터내셔널 1위에 올랐던 요시마쓰 이쿠미(吉松育美)에 빗대고 있다. 요시마쓰는 미국CBS방송에서 종군위안부와 관련한 일본 지도자들의 망언을 비판했다가 일본내에서 곤욕을 치렀다. 일부 네티즌들은 “요시마쓰가 수다로 욕을 먹었는데 당신도 조심하라”며 “조선인과 아사히신문은 일본을 차별국가로 각인시키려 자작연출극을 벌인다”고 공격했다. “일본을 폄하하기 위해 조선인이나 중국인이 (미스 일본을) 선정한 것 아니냐”“어제 자주 가는 식당에 무슬림 여성 2명이 와 불편했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지난 12일 미스 유니버스 일본 대표로 뽑힌 혼혈 1세대 미야모토 아리아나. 미야모토 아리아나 페이스북 사진
지난 12일 미스 유니버스 일본 대표로 뽑힌 혼혈 1세대 미야모토 아리아나. 미야모토 아리아나 페이스북 사진

극단적 공격에 대한 반발도 거세다. “미스 유니버스에서 유니버스는 우주 전세계 삼라만상을 의미한다. 원래 순수한 민족은 없다”“일본사회는 불합리한 것까지 동질성을 요구한다”“세계에서 미움 받는 인종주의자들이 되고 싶나”“네오나치보다 심한 일본”….

무엇보다 미야모토가 “하프도 일본을 대표할 수 있음을 전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당당하게 나오면서 긍정적 담론도 끌어내고 있다. 혼혈이 일반화한 일본사회가 얼핏 국제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견고한 벽에 가로막혀 있음을 보여준데다, 순혈주의나 민족성을 강조하는 일본사회에서 ‘다문화주의’가 정착되는데 큰 진전을 이룰 계기라는 평가다. 미야모토는 고교 때 잠시 미국으로 가 공부했지만 다시 일본에 돌아와서 모델활동을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로 바텐더 생활을 할 때 미녀대회 참가권유를 받고서도 자신의 외양을 꺼려 용기를 내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금 “팬들의 격려 글도 많다. 인종이 다르다고 일본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다”고 힘을 내고 있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지난 23일 일본의 역사 및 지리적 특수성까지 동원해 이 논쟁을 설명했다. 1635년 도쿠가와 막부(德川幕府)가 쇄국(鎖國)칙령을 내려 외부세계와의 교류를 금지하면서, 어떤 외국인도 일본에 입국할 수 없고 어떤 일본인도 목숨을 걸지 않고는 일본을 떠날 수 없었다. 일종의 ‘갈라파고스 효과’즉, “일본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외국의 영향으로부터 격리되어 스스로 발전돼야 한다는 섬나라적 폐쇄성을 기반으로 한 규범과 가치가 있다”고 정의한 미국 템플대 도쿄캠퍼스의 킬 클리브랜드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재미 저널리스트인 이와타 타로우(岩田太?)씨는 29일 ‘재팬인 뎁스’를 통해 그녀가 시련을 딛고 일본의 대표로 활약할 것이란 응원칼럼을 게재했다. “큐슈 출신 여성의 의기(意?), 야마토나데시코(일본의 요조숙녀)의 본보기 아닌가. 굳건한 생각을 가진 아름다운 여성이 대표를 맡은 일본에겐 정말 행운이다.”

미야모토 논쟁은 일본사회가 다문화와 다인종을 포용하는 ‘열린사회’로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일본인에게 던지고 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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