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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직 너만 거기에..." 텅빈 체육관서 링거 꽂고 끝모를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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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직 너만 거기에..." 텅빈 체육관서 링거 꽂고 끝모를 기다림

입력
2014.06.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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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집에 가자] ▶ 진도 팽목항 난간에서 아이들을 부르는 기타와 과자들. 단원고 남현철군의 기타에는 "영원히 사랑한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 쓰여있다.
[아들아 집에 가자] ▶ 진도 팽목항 난간에서 아이들을 부르는 기타와 과자들. 단원고 남현철군의 기타에는 "영원히 사랑한다.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 쓰여있다.

단원고 학생·교사 8명과 일반 탑승자·선원 등 4명

구조 소식 일주일째 안들려 "이보다 가혹한 고통은 없어"

꼭 두 달 전인 4월 16일 전남 진도로 내려오던 이들은 “추위와 배고픔에 떨 아이 빨리 집에 데려가야지”라는 생각뿐이었다. 맞닥뜨린 현실은 충격이고 이었다. 잠깐일 줄 알았던 기다림은 날을 넘기고 달을 넘겼다. 함께 울고 절규하던 가족들은 하나 둘 떠나갔다. “마지막이면 어쩌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은 영영 뼈조차 못 찾을지 모른다는 초조감으로 번져갔다. 피가 말랐다. 몸과 마음은 망부석처럼 굳어갔다.

세월호 침몰 두 달이 된 16일 아직 찬 바닷속에 12명이 남아있다. 단원고 2학년 남현철 윤민지 조은화 허다윤 황지현(이상 17세) 박영인(16) 학생, 양승진(57) 고창석(41) 교사, 권재근(52)씨와 그의 아들 혁규(6)군, 이영숙(53)씨, 조리원 이묘희(56)씨. 열두 실종자 가족들은 “피붙이의 시신이라도 붙잡고 울게 해달라”고 절규하고 있다. 잊어서는 안 되는 이름들, 잊지 않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끝까지 함께...] 진도 팽목항을 방문한 사람들이 부두 난간에 걸어놓고 간 손팻말에는 '함께 분노하겠습니다' '함께 울겠습니다' '함께 기다리겠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끝까지 함께...] 진도 팽목항을 방문한 사람들이 부두 난간에 걸어놓고 간 손팻말에는 '함께 분노하겠습니다' '함께 울겠습니다' '함께 기다리겠습니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두 달, 그 가혹한 기다림

지난 8일 진도 실내체육관. 수백명이 머물던 체육관 바닥을 온기 잃은 담요들이 덮고 있었다. 사고 초기 실종자 가족 500여명이 빽빽이 모여 “빨리 살려내라”며 고함치고 울부짖던 아비규환은 적막으로 바뀌었다. 차량 300여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은 텅 비었고, 차를 통제하던 경찰 수백 명도, 체육관 2층에 자리한 방송카메라 십수 대도 사라졌다. 실종자 무사귀환 문구가 적힌 색색의 포스트잇 수백장은 빛을 잃은 지 오래다.

실종자 가족 5명이 링거를 꽂았다. 단원고 남현철군의 아버지는 “이를 악물고 버틴다. 이보다 더한 고통은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참사로 숨진 이다운군이 작곡하고 가수 신용재가 부른 곡 ‘사랑하는 그대여’의 노랫말을 아들이 지었다는 걸 알고는 그리움만 더했다. 아들의 글 솜씨를 신기해하던 그는 한탄했다. “내 아들은 왜 아직 저 차가운 바닷속에 있을까. 정말 원망스럽다.”

50여일 전 품었던 생존의 기대감은 바닷바람에 실려 나간 듯 했다. 남은 가족들은 숨 쉴 수 있는 공간인 ‘에어포켓’ 이야기나 생존 정황을 언급한 문자메시지를 본 기억도 없는 듯했다. 해경에게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고, 일부 가족은 되레 “해경이 기 죽으면 우리 애 안 나올지도 모른다”고 귀띔했다. 새끼를 못 살렸단 원망은 남았지만 시신 수습을 위해 드러내지는 않았다. 두 달이라는 시간은 이렇게 이들을 변화시켰다.

[우리딸 지현아...] 두 달이 되도록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은 단원고 2학년 황지현양의 어머니 신명섭씨가 13일 텅빈 진도 실내체육관에 앉아 떠난 가족들이 남긴 이불만 바라보고 있다.
[우리딸 지현아...] 두 달이 되도록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은 단원고 2학년 황지현양의 어머니 신명섭씨가 13일 텅빈 진도 실내체육관에 앉아 떠난 가족들이 남긴 이불만 바라보고 있다.

마지막까지 남을까, 시신 못 찾을까 겁나

남은 실종자 가족에게 가장 큰 고통은 시신이라도 못 찾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다. 단원고 황지현양의 어머니 신명섭(49)씨는 실내체육관 구석을 지켰다. 지현양은 결혼 7년 만에 엄마가 되려고 온갖 한약을 다 구해 마시고 어렵게 낳은 딸이다. “내가 마지막인 건 두렵지만 참을 수 있어요. 우리 딸 뼈라도 못 찾을까, 그게 더 겁나요.”

조은화양 어머니 이금희(45)씨도 “다들 선장을 ‘죽일 놈’이라고 하는데 난 그런 생각도 안 한다. 오로지 딸만 찾으면 된다”고 했다. 이씨는 가족의 주검을 찾은 이들이 하나 둘 떠나며 “49재는 어떻게 하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렸다고 했다. 이씨는 “은화 오빠(19)를 위해서라도 딸을 하루빨리 찾아 돌아가고 싶다. 정부에 내 딸 꼭 찾아달라고 말 좀 해달라”고 애원했다.

혼자 구조된 권지연(5)양의 큰아버지 오복(59)씨는 지연이 오빠 혁규(6)군이 “워낙 몸집이 작아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내가 마지막에 남겠지”라고 말했다. 이런 생각에 소주잔을 기울여야 쪽잠이라도 청한다. 지연이 어머니는 52일째 팽목항 시신보관소에 있다. 오복씨는 지연이 아빠 재근씨까지 시신 3구를 태운 헬기가 서울로 갈 날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40㎞ 떨어진 바다에서 시신이 발견된 뒤 최악을 염두에 둔다. 만약 (시신이) 유실됐다면 내가 얼마나 무섭게 변할지 두렵다.” 팽목항에서 동생을 기다리던 50대 남성은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다 내뱉었다.

허다윤양(맨 오른쪽) 가족사진. 사진관에서 찾는 날 참사가 나 아버지 홍환씨의 품에는 아직 없다. 가족 제공
허다윤양(맨 오른쪽) 가족사진. 사진관에서 찾는 날 참사가 나 아버지 홍환씨의 품에는 아직 없다. 가족 제공

한 순간도 떠나지 않는 피붙이 생각

이영호(45)씨는 제주 호텔 카지노에 정규직 일자리를 얻어 짐을 옮기다 변을 당한 누나 이영숙(53)씨의 시신을 못 알아볼까 봐 사고 당일 입은 보라색 점퍼의 사진까지 찍어왔다. 옷을 사준 지인에게 매장을 물어 점퍼 치수와 모델명까지 알아냈다. 호텔 카지노에서 수년간 청소를 하다 올해 초 생애 첫 정규직이 돼 선물받은 옷이다. 그는 “혹시라도 누나를 몰라볼까 봐 뭐라도 해야 했다”고 하소연했다.

이씨는 3년 전까지 20여년을 서울에서 누나와 단둘이 살았다. 매일 새벽 출근하는 그에게 누나는 갓 지은 쌀밥과 생선구이를 먹였다. 밥만 보면 누나가 떠올라 이씨는 20일 넘게 링거로 목숨을 부지했다. “4월 중순 바지선에서 ‘굴비 먹다가 가시가 목에 걸려 죽을 뻔했어. 누나가 와서 좀 발라줘’라며 속으로 울었다. 그게 언젠데 아직도 안 나와.”

단원고 허다윤양 아버지 홍환(50)씨는 11일 저녁, 실내체육관 한쪽에서 딸과 주고 받은 카카오톡 대화를 찾고 있었다. 사고 날 사진관에서 찾을 예정이었던 가족사진을 멍하게 들여다보던 그의 입에서 신음처럼 말이 흘러나왔다. “아빠는 다윤이 입에 그 좋아하는 민트캔디도 못 넣어주네.” 그는 신경섬유종이라는 희귀병을 앓는 아내가 딸이 수습되면 충격으로 쓰러질까 봐 가슴만 졸이고 있다.

9일 오전 팽목항. 실종자 가족들은 사고 해역이 보이는 부둣가로 어김 없이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윤민지양의 어머니는 딸이 좋아하던 가수 비스트의 사진첩 옆에 떡국을 놓았다. 나흘 뒤 딸이 즐겨먹던 샌드위치가 또 놓였다. 그는 매일 자신이 먹을 음식을 딸에게 준다. “애가 나오기 전엔 밥이 안 넘어간다”며. 아버지는 13일 바지선에 올라 줄담배를 태운 뒤 짧게 말했다. “종교가 없는데 염주팔찌를 세 개나 차고 있어. 딸이 나올까 싶어서.”

양승진 교사의 딸 지혜(27)씨는 마음을 다잡고 10일 서울 노량진 학원가로 돌아갔다. 아버지에게 공부로 꿈을 이루는 걸 못 보여준 게 가장 마음 아팠단다. 딸은 아버지 같은 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시험에 도전한다. 남동생(25)도 다음달 치를 관세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둘 다 책장을 넘기기 힘들지만 아빠가 바라는 거니까 꼭 해낼 겁니다.”

“잊히고 싶지 않아요”

7일째 시신 수습이 없고, 이틀 전 월드컵이 개막하면서 실종자 가족들은 더욱 불안해졌다. 황지현양 어머니는 “TV에서 세월호 뉴스가 안 나와서 관심이 줄어든 것을 실감한다”며 고개를 떨궜다.

단원고 박영인군의 어머니는 최근 지인들의 전화를 받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언론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보도 비중이 크게 줄자 궁금해서 연락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에는 하루종일 세월호 사고를 생중계할 때에 비하면 1%도 보도가 안 나오는 듯하다”며 “이렇게 금세 잊힐까 걱정”이라고 털어놓았다.

학생들을 구하러 배로 되돌아갔다 여태 소식이 없는 고창석 교사의 형 경석(53)씨는 사고 첫날부터 매일 수차례 방파제를 드나든다. 열두 살 터울인 막내 동생 고 교사를 아들처럼 키웠다고 했다. 경석씨는 팽목항 방파제에 있는 빨간 등대까지 갔다가 쓸쓸히 돌아 나오며 말했다. “남은 우리들 이대로 잊혀질까 그게 두렵죠.”

진도=글ㆍ사진 손현성기자 hshs@hk.co.kr

신지후기자 hoo@hk.co.kr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정준호기자 junho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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