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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성 기자

등록 : 2017.10.23 04:40

500년 전 루터, 한국 교회에 고하다

종교개혁 500주년 출간 봇물

등록 : 2017.10.23 04:40

종교개혁의 성과를 뛰어넘어

우리 교회에 보내는 질책 담아

神 목소리만 듣고자 했던 개혁

“되레 개신교 분열 불러” 주장도

교황의 교서를 불태우고 있는 마르틴 루터. 1517년 95개조 반박문 발표 이후 교황청과의 대립을 통해 루터는 자신의 사상을 확고하게 만들어나간다. 파울 투만 1872년작.

“루터는 정치적으로 보수여서 싫어했다. 그런데 젊은 나이에 용감하게도 95개조 반박문을 탁하니 내건다.

나라면 그 나이에 그럴 수 있었을까.” (김영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루터는 교회의 탄압에 논리적으로 맞서기 위해 평생 글을 썼는데 그 분량이 6만쪽을 넘는다. 루터를 단순히 종교개혁가로 보면 안되고 사상가로 봐야 한다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김덕영 사회학자)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베텐베르크 교회 문에다 면죄부 문제를 따지기 위해 독일 제국교회 수석대주교 알브레히트 폰 브란덴부르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95개조 반박문을 내걸었다. 그 이후 500년이 지났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출판계는 묵직한 읽을 거리를 내놓고 있다. 단순히 종교개혁으로 유럽이 근대로 접어들었다는 내용을 뛰어넘었을 뿐 아니라, 한국 교회에 보내는 축하의 생일상보다는 질책의 회초리에 가깝다.

도서출판 길에 내놓은 루터 3부작. 왼쪽부터 '종교개혁의 역사' '루터의 3대 논문집' '루터와 종교개혁'.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도서출판 길에서 내놓는 3권의 책이다. ‘독일 민족의 그리스도인 귀족에게 고함’은 루터가 교회에 맞서 1519년 발표한 3대 논문(‘독일 민족의…’, ‘교회의 바빌론 포로에 대한 마르틴 루터의 서주’,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논설’)의 번역본이다. 루터의 초기 사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생생한 기록으로 꼽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중역본만 소개됐다. 이번 책은 라틴어본,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판본으로 인정받는 ‘바이마르 비판본’을 옮겼다. 번역을 맡은 황정욱은 “일반 대중을 위한 독일어본과 달리 라틴어본은 당대의 지식인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성경 인용도 더 풍부하고 신학적으로 더 정확하고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의 교회사가 토마스 카우프만이 쓴 ‘종교개혁의 역사’와 사회학자인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의 ‘루터와 종교개혁’은 우리 시대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먼저 카우프만은 중교개혁을 가톨릭의 타락상을 강조하고 루터의 영웅성에 초점을 맞추는 기존 접근법을 비판하면서 루터는 충실한 중세인이었음을 강조한다. 카우프만의 주장 중 뼈아픈 건 오직 신의 목소리만 듣고자 했던 종교개혁의 정신이 결국엔 실패했다는 대목이다. 비판대상이었던 교황의 가톨릭은 역(逆)종교개혁으로 살아남은 반면, 되레 개신교는 정치화되고 분열해버렸다는 점 때문이다. 김덕영 역시 “루터의 비판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와 ‘교황’이라는 단어만 ‘한국 개신교’와 ‘개신교 성직자’라는 단어로 대체하면 그대로 한국 개신교에 대한 비판이 될 것”이라 지적해뒀다.

21세기북스는 종교개혁 책인 박흥식 교수의 '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왼쪽),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만든 '1517 종교개혁'을 내놓았다.

21세기북스는 서양중세사 전공자인 박흥식 서울대 교수의 책 ‘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와 독일 시사잡지 슈피겔에서 펴낸 ‘1517 종교개혁’을 번역해 선보였다. ’1517 종교개혁’이 종교개혁을 둘러싼 독일 학자들의 다양한 관점을 선보인다면, 박 교수의 책은 직접적으로 한국 교회를 겨눈다.

박 교수가 집중하는 대목은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열광에서 보듯 오늘날엔 가톨릭이 개신교보다 더 개혁적이고 환영 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루터가 교황을 비판했지만, 루터 또한 ‘개신교의 교황’이라 비판 받을 정도로 점차 당대의 고통에 무감각했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오늘날 한국 교회가 쇠락한 것도 ‘그들’만을 위한 모임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폴터 라인하르트의 '루터'. 개신교가 아닌 교황의 눈으로 종교개혁에 접근한다.

폴터 라인하르트의 ‘루터’(제3의 공간)도 눈길을 끌만하다. ‘교황제’ 연구 전문가인 라인하르트는 ‘부패한 교황 대 깨끗한 루터’라는 이분법은 개신교의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교회의 부패와 내부 비판은 늘 있어왔던 일이었다. 루터의 비판이 먹힌 것은 가톨릭의 주변부로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던 독일 지역의 제후들이 정치적으로 뒷받침했고, 실제로는 말도 어눌하고 샌님 같았던 루터가 당시의 신매체인 인쇄술을 이용해 강렬한 문건을 써내는 여론전에 능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승우 길 기획실장은 “중세시대 종교는 삶의 모든 것이었기에 종교개혁은 종교만의 개혁의 아니었을 뿐 더러 500년 전에 일어나 지금은 다 끝난 사건 같은 게 아니다”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그런 관점에서 한국사회를 비춰보고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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