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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ㆍ늑대ㆍ여우 복원한다지만…무분별한 도로 개발로 살 수 있는 곳도 마땅치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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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ㆍ늑대ㆍ여우 복원한다지만…무분별한 도로 개발로 살 수 있는 곳도 마땅치 않아

입력
2015.12.1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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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9일 경기 안산 시화호 습지 부근에서 수컷 삵의 폐사체가 발견됐다. 서울대공원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부검을 했지만 사체 부패로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5월과 6월에도 시화호 인근에서 암컷과 수컷 삵 한 쌍이 죽은 채로 발견됐다. 삵을 검시한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위장에서 고무장갑 조각이 발견되는 등 제대로 된 먹이를 먹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서식환경 조성 없이 종복원 사업부터?

3개월 만에 잇따라 사체로 발견된 삵 3마리는 지난해 3월 서울대공원이 멸종위기종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시화호 일대에 방사한 5마리 중 일부다. 남은 2마리 중에서도 생사가 확인된 것은 암컷 1마리다. 지난 9월 시화호 상류 습지에 나타나 오리를 사냥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나머지 수컷 1마리의 행방은 묘연하다. 지난해 8월 시화호에서 8㎞ 정도 떨어진 경기 화성 자동차안전시험장 부근에서 발견된 것이 마지막이다.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폐사했다면 로드킬 당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1960~1970년대만 해도 남한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삵의 개체수는 점점 줄어 2급 멸종위기 야생동식물로 지정돼있다. 도로 확장으로 로드킬(road killㆍ동물이 도로를 횡단하다가 차량 등에 치어 죽는 것)을 당하는 경우가 흔하다. 2008~2012년 5년간 전국에서 130마리의 삵이 로드킬로 사망했다. 삵의 행동반경은 약 16㎢ 정도로 넓은 편이 아닌데도 차량에 치어 횡사하는 일이 흔하다.

문제는 삵보다 행동반경이 더 큰 대형 포유류다. 환경당국은 대형 포유류의 자연복원에 힘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들이 서식할 수 있는 생태환경 조성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하다. 환경부는 멸종위기야생동식물 1급인 반달가슴곰, 여우, 산양 복원사업을 진행 중이며 늑대와 호랑이, 표범도 복원사업 대상으로 검토되고 있다.

멧돼지, 고라니의 개체수가 늘어 생태계를 교란하며 농가에도 큰 피해를 주는 상황이라 국내에서 사라진 최상위 포식자를 되살려 먹이사슬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것이 환경부가 밝힌 복원사업의 명분이다. 하지만 국토 곳곳에 도로가 깔리면서 생태계 단절 등 급속히 서식환경이 악화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효과는 물음표다. 전동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환경평가1실장은 “국내 생태환경은 이미 대형 포유류가 서식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늘어난 도로…줄어든 서식지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 ‘도로건설로 인한 도로망 발전과 생물서식처 파편화 분석’에 따르면 1969년 국내 도로 밀도는 고속도로ㆍ국도 등을 모두 포함해 국토면적 1㎢당 0.37㎞였다. 가로ㆍ세로 1㎞ 면적에 도로가 370m를 차지했다는 뜻이다. 1㎢당 도로밀도는 1979년 0.46㎞, 1989년 0.57㎞로 서서히 늘다가 급증하기 시작해 1999년 0.87㎞로 2013년에는 1.06㎞까지 치솟았다. 국내 도로밀도가 44년 만에 2.86배 늘어난 것이다.

지역별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1㎢ 당 도로밀도가 가장 높은 곳은 서울로 13.46㎞나 됐다. 부산(3.93㎞), 대전(3.52㎞) 등 대도시의 도로밀도는 전국 평균의 2~3배를 상회했다. 그나마 도로밀도가 낮은 지역은 산악지대가 상대적으로 많은 강원(0.58㎞)과 경북(0.65㎞) 정도다. 이항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복원 후보로 꼽히는 표범이 국내에서 서식할 수 있는 곳은 설악산 북쪽 비무장지대(DMZ) 인근 정도”라며 “남한에는 대형 포유류가 서식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2001년 스웨덴 농업과학대 연구진이 발표한 ‘도로의 환경적 영향’보고서에 따르면 1㎢당 도로밀도가 0.25㎞ 이하일 때는 여우, 곰, 사슴 등이 살 수 있지만 0.6㎞를 넘어가면 대형 포유류는 살지 못한다. 1㎢당 도로밀도가 1㎞를 넘으면 소형 동물조차 살 수 없다.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던 서식환경이 도로건설로 단절됐기 때문이다. 전동준 실장은 “도로 건설로 생태계 연결성이 끊기면 대형동물부터 이동할 수가 없게 되고, 좁은 공간에 갇힌 채 근친교배를 하다가 자연 도태하게 된다”며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된 강원과 경북조차 현재 복원사업 중인 대형 포유류가 서식하기에 알맞지 않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국내의 경우 경부고속도로 건설 이전의 국토를 하나의 통합된 서식지로 가정했을 때 도로 신설로 1969년 국토가 4개의 서식지로 쪼개졌고. 이후 고속도로 건설이 가속화되며 1999년 30개, 2013년 60개로 조각났다. 서식지가 쪼개지면 대형 동물부터 살기 어려워진다.

생태계 연결성 확보 우선돼야

도시화로 척박해져 가는 서식지 환경을 감안할 때 야생동물 복원사업을 할 때는 생태계의 연결성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희종 공주대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선임수의사는 “멸종위기 동물을 단순히 자연에 방사했다고 해서 종 복원을 한 것이 아니다”라며 “야생에서 번식하고 살 수 있는 안정적인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전동준 실장도 “고속도로로 끊긴 생태계를 잇는 생태다리를 곳곳에 건설하는 등 서식환경 개선 노력이 필수적으로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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