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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초등학교 한자 병기, 득보다 실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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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초등학교 한자 병기, 득보다 실이 크다

입력
2015.08.16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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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6학년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려는 정부 방침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교육부가 지난해 ‘2015 문ㆍ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총론 시안’을 통해 ‘한자 교육 활성화를 위해 초ㆍ중ㆍ고 등급별로 적정한 한자 수를 제시하고 교과서에 한자 병기 확대를 검토한다’고 밝힌 게 발단이다. 찬성 진영에서는 교육효과를 주장하고, 반대 진영에서는 학업부담과 사교육 증가를 우려한다.

한자가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이고 학문이나 언어소통에 도움이 된다는 측면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한자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전문적 문장이나 대화는 물론 일상적 언어ㆍ문자 소통에도 일부 제한을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굳이 초등학교가 아니라 중등 교과과정에서 한자 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으로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1970년대 한글 전용정책이 세워진 후 수십 년에 걸쳐 정착돼 온 정책을 거꾸로 되돌릴 만큼 화급한 과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자 병기는 가뜩이나 과도한 학습량에 시달리는 초등학생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일이다. 상당수 교육전문가들은 한자 병기가 학습 부담과 스트레스를 주고 주의력을 분산시켜 교과 내용의 이해를 도리어 해칠 위험이 크다고 보고 있다. 통합형 교육과정 개편을 계기로 초등학교부터 단계별로 학습량을 20% 줄여나간다는 기본 방침에도 맞지 않는다.

한글 전용 탓에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문ㆍ독해력)이 낮다는 한자 교육 강화론자들의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제 학업성취도평가에서 한국의 15살 독해력은 세계 1~2위이고, 국제성인역량평가에서도 한국 16~24살 독해력은 22개 회원국 중 3위다. 반면 한국의 55~65살 읽기 능력은 20위였다. 정작 독해력이 낮은 층은 한글전용 세대가 아니라 한자(병기) 세대인 셈이다.

무엇보다 초등학교에서의 사교육 급증이 우려된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1,026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68%가 초등학교 한자 병기 시 자녀에게 별도의 한자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2008년에 학교생활기록부에 국가자격을 기입하도록 한 것만으로도 수십만 명의 초등학생이 한자자격시험에 응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과서 한자 병기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한자 사교육을 불붙게 할 게 뻔하다. 교육 당국은 내달로 예정된 교육과정 개편안 확정을 앞두고 한자 병기가 교육 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부터 더욱 냉철히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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