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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엔 국경이 없잖아요… 이젠 낯선 고국서 인연 쌓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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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엔 국경이 없잖아요… 이젠 낯선 고국서 인연 쌓아야죠"

입력
2014.06.2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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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의 에움길] <8ㆍ끝> 타악 주자 한문경

한문경은 무대에 오를 때마다 자신의 눈빛은 안팎에서 애써 주시는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 찬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한문경은 무대에 오를 때마다 자신의 눈빛은 안팎에서 애써 주시는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 찬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음악을 하면 미국이건 유럽이건 상관 없어요. 살면서 쌓은 인연은 죽을 때까지 가니까요.”

퍼커셔니스트 한문경(28)은 이 시리즈의 마지막 손님이다. 미국, 유럽 등 세계에 친구를 두고 막 돌아 온 그는 대미에 가름하는 말을 그렇게 남겼다. 그것은 세계적 연주자의 단순한 비밀일지도 모른다.

마람바, 비브라폰, 실로폰, 팀파니, 드럼, 심벌즈 등 기성 타악기는 기본이다. 거기에 작곡가가 의도하는 고리를 찾아 새 타악기를 만드는 일도 허다하다. “현대 음악이 타악의 비중을 높이는 것은 소리의 다양함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신비하고 재미난 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거지요.”

독주회를 할 때는 사륜구동차, 용달차로도 모자라 그 악기들을 실을 트럭을 동원한다. 그 북새통 끝에 18일 치른 ‘비츠 앤드 무브먼츠’를 보자. 귀국 독주회였다. 클래식에서 타악기라는 개념이 막 일반화하기 시작한 20세기 중반의 타악기 고전 6곡이었다. 칼 하인츠 슈톡하우젠, 스티브 라이히 등 거장들의 명작만 모았으나 갓 나온 빵처럼 신선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낯설기까지 했다. “타악곡으로는 고전이지만 대중에게는 현대곡이죠.” 그 간극을 잘 알면서도 그는 낯익은 외국을 떠나 낯선 고국으로 왔다.

그는 이대부속초등학교 5학년 때 큰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첫 타악 독주회를 가졌다. 마림바는 네 살 때 시작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피아노를 시작했으니 마림바는 첫 악기라기보다는 소리 나는 장난감이었다.

“손수 마림바 채를 들고 가르치신 부모님께 무엇보다 감사하죠.” 그것은 부모 자식간의 대화이기도 했다. 그는 그런 부모를 향해 “무지무지” 감사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별난 감사법이다. 타악기를 통한 부모와 자식의 대화를 두고 그는 “한번도 재미 없었던 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첫 독주회의 곡에는 현대음악의 거장 크세나키스의 작품이 포함됐다. 그렇게 축적된 타악곡 레퍼토리로 그는 자금까지 30여 회의 독주회를 가졌다. 그것은 동시에 해외로 열린 창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일본 마림바 콩쿠르 15세 미만 연주자 부문에서 우승한 그는 서울예고 1학년 때 미국음악교사협회(MTNA) 콩쿠르에서, 3학년 때는 파리 마림바콩쿠르에서 우승했다.

항공엔지니어링 일을 하던 부친을 따라 일찍이 미국에서 생활한 그는 미국 시민권 보유자다. 줄리어드 음악원 타악기과 4년, 파리 국립음악원 3년으로 대학 과정을 이수한 그는 다시 줄리어드로 돌아가 5월 석사 학위를 땄다. 그리고 11일 돌아왔다.

“일단 완전 귀국이에요.” 그러나 여전히 그는 부유(浮遊)하는 존재이길 원한다. “하고 싶은 일과 살고 싶은 방향이 중요하죠. 물리적인 조직과 위치는 상관 안 해요.” 한번은 꿈꾸었을 자유의 현현일까.

이제 앞으로 한국에서 1, 2년마다 독주회를 할 생각이다. 고교 선배 김은혜와 2010년 창단한 타악 듀오 모아티에가 그 거점이다. 불어로 절반이라는 뜻을 가진 이 단체는 말마따나 수익금의 절반은 기부한다는 창단 이념을 지키고 있다. 모아티에는 9월 21일 류재준의 신작으로 세번째 콘서트를 한다. “솔로에서는 도저히 못 느낄 음의 향연이에요.”

얼핏 타악 하면 사물 장단 등 한국 고유의 음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한문경 역시 그렇다. 아닌게아니라 그는 초등학교 시절 사물놀이를 했고 중고 시절에는 정식으로 장구를 배웠다. 그러나 자유롭다. 자신이 꼭 그걸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제가 작곡자가 아니잖아요. 작곡가가 국악적 타악을 원한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감사히 연주할 거예요.” 그것은 단순한 기능주의적 태도를 넘어 현실 속의 예술, 특히 국악에 더더욱 심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 주목 받는 작품이라도 100년이 지나면 뭐가 살아남을지 몰라요. 선택은 관객의 몫이니까요.” 클래식 위기의 시대, 한 젊은 연주인의 말에서 자기 겸양을 넘는, 예술에 대한 무한 신뢰가 느껴진다.

“작곡가들은 꾸준히 타악 주자를 필요로 하죠.” 특히 독창성이 주무기인 현대 음악에서 타악기는 갈수록 중요성을 더해 간다. 강석희, 류재준, 임종우 등 국내 굴지의 작곡가들과의 교류에 성실히, 특유의 인간미로 임하는 그에게 초연작 연주의 기회가 유달리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걱정은 있다. “창작하는 직업은 어느 시대건 배고픈 것 아닌가요? 육체적으로 들이는 노력만큼 수익이 많이 창출되는 것은 아니니까.”

지금껏 나라 안팎에서 30여회 큰 무대를 치른 그에게도 나름의 팬이 생기고 있다. “연주회를 보고 학생들이 타악기를 배우고 싶다는 연락을 종종 하죠.” 이전에는 방학 아니면 연주회 사이가 한국 체류 기회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같은 부름에 답할 수 있게 됐다. “제가 아이들을 워낙 좋아하니까요.”

타악 주자는 대인 관계가 좋을 수밖에 없다. 엄청난 물류를 달고 다니기 때문이다. ”타인, 특히 무대감독이나 기획자들과의 친분은 필수예요.”

4월 8일 미국 뉴욕 링컨센터 내 알리스 툴리홀 공연은 타악기 앙상블과 오케스트라 협연이 주제였다. 그 자리에서 한문경은 아예 장터를 누비는 아낙이었다. “2, 3분 안에 악기들을 후닥닥 배치해주는 그 분들에게 도너츠와 커피를 대접했어요.” 타악 주자는 그래서 전세계 아트 디렉터들을 친구로 만드는 법을 나름 갖고 있다.

그는 확신에 차 말했다. “살면서 생겨난 인연은 죽을 때까지 가는 거예요.” 페이스북 팔로어가 1,600여명에 달하는 것이 우연은 아닌 셈이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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