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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자 32년… 억울한 죽음 한 건이라도 줄여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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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자 32년… 억울한 죽음 한 건이라도 줄여야죠”

입력
2018.03.05 04:4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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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사건 등 진실 규명에 일조

“범죄뿐 아니라 민사 부검 증가”

“정부 차원 전문가 양성 시급”

법의학자로 30여년간 활동하다 최근 정년퇴임한 이윤성 전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가 4일 서울 중구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법의학자로 30여년간 활동하다 최근 정년퇴임한 이윤성 전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가 4일 서울 중구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32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법의학자 길을 택할 겁니다.”

오랜 시간 법의학자로 활동하다 지난달 말 정년 퇴임한 이윤성(65)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장(전 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은 4일 “부(富)와는 거리가 먼 길이었지만, 결코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고 강조했다. 이날 서울 중구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에서 만난 이 원장은 “일반 의사는 사람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게 의무지만, 법의학자는 망자의 권리를 지키는 게 의무”라면서 “지금까지 1,000구에 가까운 시신을 살펴보며 어느 정도 소임을 해낸 것 같아 보람이 크다”고 퇴임 소감을 밝혔다.

1977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병리학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이 원장은 1986년 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전임강사로 처음 교단에 섰다. 그가 법의학자 길을 택한 건 ‘국내 1호 법의학자’라 알려진 문국진(93) 당시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영향이 컸다. 친형이 문 교수의 법의학 강의를 듣곤 “우리사회에 꼭 필요한 학문 같다”고 극찬했던 것. 이 원장은 “법의학이 외면 받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라면서 “문 교수를 ‘롤 모델(role model)’ 삼아 법의학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당시 국내 법의학 현실은 척박하다 못해 불모지에 가까웠다. 거의 모든 의과대학에 법의학 강의 자체가 없었으니 전공서적도 대부분 외국에서 들여와야 했고, 학문 자체에 대한 의대생 관심도 그리 높지 않았다. “의대생 모두가 의사가 돼 집안을 일으켜야만 했던 시절” 얘기다.

경제성장이 이뤄지고,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법의학자 역할은 점차 커졌다. 수사기관에서 의뢰한 시신을 부검해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혀내고, 이를 근거로 사건 진실을 파헤쳐 망자와 유족의 억울함을 풀어내 사회적으로 주목 받는 일 또한 많아졌다. 이 원장 역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 백남기사건특별조사위원장 등을 지내며 사회적 이슈가 된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데 일조했고, 마포 만삭 의사부인 살해 사건(2011년)처럼 억울한 죽음으로 이어질 뻔했던 강력사건 해결에 법의학 관점으로 피해자 사망 원인을 분석해 기여했다.

30년 전만 해도 이 원장을 포함해 5, 6명 정도던 법의학자는 어느덧 50여명으로 늘었지만, 법의학의 중요성이 확대된 데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다. 그래서인지 이 원장은 “법의학을 하겠다며 찾아온 후배들이 너무 반가우면서도 선뜻 ‘해보라’는 얘길 하긴 어렵다”고 했다. “여전히 돈이나 명예와는 거리가 먼 데다, 시신만 검사하는 게 일이라 정신적 고통도 상당하거든요.”

이 원장은 “법의학은 앞으로 정부 차원에서 전문가 양성 시스템을 갖춰야 할 만큼 일상으로 파고들고 있다”고 했다. 범죄뿐 아니라 민사 소송에서도 부검이 필요한 일이 늘고 있단 얘기다. 보험계약자의 사망 원인에 따라 지급액이 달라질 때, 보험금을 ‘덜 주려 하는’ 보험사와 ‘더 받고자 하는’ 유족 사이 분쟁이 대표적이다.

그는 현재 맡고 있는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장 소임을 다한 뒤, ‘억울한 죽음’을 줄이는 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겠단 뜻을 밝혔다. “예컨대 ‘부검감정서를 읽어줍니다’ 같은 공공서비스죠. 사망자 유족이 부검감정서를 받아보고도 해석이 어려워 중요한 진실을 놓치고 넘어가는 경우를 종종 봤어요. 모든 사람은 억울하게 죽지 않을 권리가 있어요. 억울한 죽음을 단 한 건이라도 줄이기 위해 봉사하고 싶습니다.”

글·사진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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