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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4차 산업혁명과 과학정책

입력
2017.07.0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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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 창출과 함께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국정 화두이다.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새 정부에서 최우선적으로 예산 및 인력을 투입할 ‘4대 복합 혁신 과제’의 하나로도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창출이 어김없이 들어가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오는 8월 대통령 직속으로 ‘4차 산업혁명 위원회’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일선에서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우려도 크다. 4차 산업혁명은 2016년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주요 의제로 등장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세계경제포럼은 4차 산업혁명을 “3차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과 바이오산업, 물리학 등의 경계를 융합하는 기술혁명”이라고 정의했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초지능-초연결성 기술은 4차 산업혁명을 읽는 핵심 키워드 중 일부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이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우리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4차 산업혁명은 실체가 없는 유령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을 뛰어넘어 6차, 7차 산업혁명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라 일각의 이런 걱정을 모른 체 하긴 어렵다.

박근혜 정부에서 실체 없는 ‘창조경제’가 국정의 모든 이슈를 집어삼킨 블랙홀이었음을 우리 모두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창조경제는 최악이었다. 과학이 그 자체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창조경제를 위한 시녀역할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제2의 창조경제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과학을 그 무엇의 시종 노릇에서 해방시키려면 과학 자체의 발전논리부터 인정해야 한다. 기술은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지만 과학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기초과학’을 로열티를 받을 수 있는 ‘원천기술’과 구분하지 못한다. 기초과학에 대한 과학자와 공무원의 개념정의는 꽤 다르다. 과학은 정보이며 지식이다. 이를 이용해 돈을 버는 방법을 만드는 것은 기업(특히 벤처)이 할 일이다. 전자에게 후자를 요구하면 비극이 시작된다. 정부가 할 일은 과학은 과학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각자 할 일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과학은 4차 산업혁명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의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되는 양자컴퓨터나 양자통신 기술은 4차 산업혁명을 ‘위해서’ 개발된 기술이 아니다. 미시세계를 지배하는 자연의 기본원리인 양자역학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과학적 노력의 결과로 태어났다. 얼마 전 인공위성을 이용한 장거리 양자통신 실험을 성공한 중국의 판젠웨이는 자국 국가항천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반면, 이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이자 판젠웨이의 지도교수였던 오스트리아의 안톤 차일링거는 유럽 우주국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아마도 나중에 양자 인터넷이 상용화된다면 로열티로 큰돈을 버는 사람은 판젠웨이보다 어느 벤처 창업가일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각자의 역할과 영역을 보호하고 양자를 잘 연결해주면 된다.

4차 산업혁명의 실체가 모호하긴 하나, 새로운 것이 전혀 없는 사기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만도 없다. 지금 우리는 분명 커다란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나는 그 변화의 핵심이 인간과 세상을 디지털로 다시 재구축(온/오프라인에서 모두)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는 정부의 역할이 보다 분명해진다. 한국형 알파고나 한국형 포켓몬고를 지원하기보다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를 디지털로 재구축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를 하나씩 확립해야 한다. 디지털 정보의 수집, 유통, 관리, 소비, 활용 및 이를 실물화할 수 있는 수단의 확보까지 매 단계별 중요한 길목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많다. 가장 시급하게는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가 보다 명확해야 한다. 남들이 하니까 따라가는 식이면 여전히 ‘빠른 추격자’의 위치를 벗어날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의 원조 격인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은 독일의 필요에 따라 나온 것이다. 우리의 필요는 과연 무엇인지, 우리는 왜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려고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져야 한다.

요컨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는 정책이 과학정책을 대신할 수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각각의 영역에 맞는 독립된 정책이 필요하다. 각자의 생태계를 잘 보호해 주면 그 속에서 온갖 교배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정부는 그 환경과 통로를 최대한 확보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미명 아래 대학을 취업학원으로 전락시키는 정책부터 당장 중지해야 한다. 장담컨대 대학에서 기초과학, 그리고 기초학문을 홀대한다면 그 어떤 산업혁명도 사기로 끝날 것이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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