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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5월 14일] 화변기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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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5월 14일] 화변기 유감

입력
2013.05.13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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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들렀다. 오늘따라 문 앞의 작은 표지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화장실 유머'에나 어울릴 법한 스캔들로 세간이 떠들썩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표지판에 적힌 바 한쪽은 '양변기'. 맞은편은 '화변기'.

화변기? 속으로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화(和)'는 일본 사람들이 자기네 것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양(洋)'과 대비해서 쓸 때가 많다. 양과자는 서양과자고 화과자는 일본과자다. 양실은 침대방이고 화실(和室)은 다다미방이다. 그러면 화변기는 일본식 변기? 글쎄다. 일본 사람들에게는 '우리식'일 수 있겠지만, 우리도 일본식이라 해야 하는 건가? 쪼그려 앉아 일을 보는 변기는 어느 나라에나 있다. 중국에도 있고 인도에도 있고 심지어는 프랑스에서도 본 적이 있다.

나는 일본에서 건너와 내 언어에 뿌리 내린 말들을 그리 싫어하지는 않는다. 유래야 어쨌건 '즈봉'에도 '빤쓰'에도 '간지'에도 우리 자신이 겪어 왔거나 겪고 있는 시간이 일종의 질감으로서 살아 있다. 하지만 '화변기'는, 그냥 무신경해 보인다. 독도에 대한 마음 씀씀이의 1%만 일상에 관심을 돌려도 '화변기'라는 말이 편하지는 않을 텐데. 화장실 같은 일상 공간에서조차 일본식 어휘를 태연히 붙이면서 '다케시마'에 거품 무는 건 모순 아닌가. 화변기 대신 어떤 단어가 적당할지 곰곰 생각 좀 해 봐야겠다. 사실 나에게는 독도보다 화장실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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