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마음과 기교의 절묘한 배합… 창작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서 시작된다

알림

마음과 기교의 절묘한 배합… 창작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서 시작된다

입력
2015.02.17 04:40
0 0

자신의 마음을 70%만 보여 주되

보여 주지 않은 30%의 마음까지 상대가 알아차리게 하는 기술 필요

서점에는 창작에 대한 수많은 책들이 쌓여 있다. 작가들이 직접 쓴 창작론도 있고, 심리 전문가가 밝혀낸 창작의 비밀에 대한 책도 있고, 정체가 뭔지 궁금한 사람이 써 내려간 창작론도 있다. 창작의 비밀을 밝혀내는 방법도 제 각각이다. 창작 관련 책들이 이렇게 많이 필요한 것일까 싶다가도 한 권 한 권 자세히 들여다보곤 다양한 내용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는 이야기가 모두 다르고 시도하는 방법이 제 각각이지만 모든 책들은 서로 연결돼 있다.

창작에 대해 쓰는 일은, 우주에 대해 쓰는 일과 비슷하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 적 있는 사람은 환희에 넘치지만 읽는 사람은 막막할 뿐이다. 창작에 대해 쓰는 일은, 공기에 대해 쓰는 일과도 비슷하다. 누구나 매일 창작이라는 과정을 겪지만 형체나 실체에 대해 설명하기란 지난하다. 창작에 대해 쓰는 일은, 정전이 된 도시에 대해 쓰는 일과도 비슷하다. 작가들은 자신에게 일어났던 창작의 환희에 대해 기록하려고 하지만 이미 모든 불은 꺼져 있다. 완벽한 어둠 속에서 자신이 보았던 것을 기억해내야 하고, 그걸 묘사해야 한다. 창작에 대해 쓰는 일은, 결국 무모한 일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사랑의 원인을 밝혀내려고 애쓸 때처럼 안쓰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창작자들은 창작에 대해서 어떻게든 말하려고 한다. 제각각의 이유가 있겠지만 모두에게 공통된 이유는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창작이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최고의 오락임을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다.”

창작이 오직 ‘기술’에 관련된 문제라면 해결 방법은 쉬울 것이다. 기술에는 정확한 답이 있을 것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식이 있을 것이다. 기술의 영역에서는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가 가능하다.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에 가 닿을 수 있다. 반대로 창작이 오직 ‘마음’에 관련된 문제라면 우리는 창작을 시도해보려는 엄두조차 내지 못할 것이다. 마음은 전달하기 쉽지 않고 붙잡을 수도 없으며 해킹할 수도 없다. 마음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어서 100명에게 있는 100개의 마음이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열 길 물속을 알아내기 위해 잠수정을 보낼 수 있지만 한 길 사람 마음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세계 최고의 기술로도 부족하다. 창작이 어려운 이유는 기술과 마음을 모두 붙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넘치지만 기술이 부족할 때 일기가 된다. 솔직한 글이 무조건 좋은 글은 아니다.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친절은 오히려 불편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 솔직하고 싶다면 자신의 솔직함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기술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100% 보여준다고 해서 상대방이 그걸 다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을 70%만 보여주되 보여주지 않은 30%의 마음까지도 상대방이 알아차리게 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기술은 넘치지만 마음이 부족할 때 기계가 된다. 많은 할리우드의 영화가 여기에 해당한다. 통계로 만든 이야기, 기계로 만든 이야기에는 마음이 들어갈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 모든 이야기에 마음이 들어갈 필요는 없지만 마음이 들어가지 않은 이야기로 누군가의 마음을 뒤흔들기란 쉽지 않다. 마음과 기술을 어떻게 하면 절묘하게 배합할 수 있을까. 모든 창작 관련 책들의 공통적인 주제다. 창작 관련 책들을 읽는 이유 역시 비슷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책에서 기교를 배우고 싶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책을 통해 창작의 동기를 촉발시키고 싶을 것이다. ‘창작의 비밀’ 연재를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창작에 도움이 될 책 몇 권을 소개할까 한다.

아티스트 웨이

줄리아 카메론 지음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하고 문예창작 강사로도 알려진 줄리아 카메론의 책이다.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와 결혼하여-지금은 이혼했지만-걸작 ‘택시 드라이버’의 시나리오를 함께 쓰기도 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창작자들을 위한 자기계발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티스트 웨이’라는 제목 역시 뭔가 ‘사기꾼스럽다’는 인상이 강했다. 글의 중간중간 섞여 있는, 뻔뻔하다 싶은 자기 자랑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기 역할은 충분히 하는 책이다. 무언가 시작해보고 싶은데 어디에다 출발선을 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사람이라면, 잊고 있던 자신의 꿈을 떠올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이 도화선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기 예술에 성직자처럼 헌신한다. 어떤 사람은 빛나는 영광을 마주할 것이며, 또 어떤 사람은 저 멀리 있는 영광에 다가가려고 계속 정진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토니상, 오스카상, 전미도서상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명성은 일부에게 다가올 테지만, 명예는 작품을 만드는 모든 사람에게 찾아올 것이다. 예술가로서 우리는 ‘신은 하찮은 것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체험한다. 예술을 만들면서 우리는 예술적인 삶을 만든다. 예술을 만들면서 우리는 창조주의 손을 맞잡게 된다.” 나도 87%쯤 동의한다.

당신 안의 예술가를 깨워라

에릭 메이즐 지음

상담심리학 박사이자 ‘창조성 코치’로 알려진 에릭 메이즐의 책이다. 지속적인 연습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목표와 결과를 계속 확인하라는 메시지는 ‘아티스트 웨이’와 비슷하지만 창작자의 심리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아티스트 웨이’를 읽었는데도 뭔가 부족하다 싶을 때 읽으면 좋다.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지음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의 창작론을 담은 책이다. 창작자들 사이에서는, 특히 글을 쓰는 창작자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책이다. 나 역시 여러 번 읽었다.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때나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 이 책을 뒤적이게 된다. 마음과 기술을 효과적으로 배합하는 방법도 잘 들어 있고, 무엇보다 구체적인 충고들이 많아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내가 가장 큰 도움을 받은 문구는 이거였다. “우선 이것부터 해결하자. 지금 여러분의 책상을 한구석에 붙여놓고, 글을 쓰려고 그 자리에 앉을 때마다 책상을 방 한복판에 놓지 않은 이유를 상기하도록 하자.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내 작업실의 책상은 구석에 붙여 놓았다.

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미국에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가 있다면 한국에는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이 있다.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마음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책이다. 다 읽고 나면 뭐라도 쓰고 싶어질 것이다. “처음부터 잘 쓰지 그랬냐고? 아직 결말을 모르는데 어떻게 처음부터 잘 쓰나? 마찬가지다. 내 인생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무슨 수로 처음부터 잘 살겠나? 소설을 쓰는 일은 ‘인생이라는 게 원래 뭐 그 따위’라는 사실을 깊이 이해하는 일로 시작한다는 말은 이런 뜻이다. 처음부터 잘 사는 사람은 누구나 없다. 그건 소설도 마찬가지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소설은 시작된다.”

시기심

롤프 하우블 지음

심리학자 롤프 하우블의 책. 창작을 시작했으나 도무지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다른 사람이 불러일으키는 시기심을 느긋하게 대할 수 있으려면, 자기만이 가진 특별한 재산들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진정한 자부심이어야 한다. 거짓된 자부심은 자신을 과장하게 평가한 결과이고, 열등감을 속이려는 엉성한 가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말은 포크너의 말과 비슷한 뜻일 수 있다. “동료나 선배보다 나은 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라. 자신보다 나은 자가 되려고 노력하라.” 이 책을 읽으면 계속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창의성을 지휘하라

에드 캣멀 지음

‘토이 스토리’는 마음과 기술을 가장 극적인 비율로 배합한 애니메이션일 것이다. ‘창의성을 지휘하라’는 ‘토이 스토리’와 ‘월-E’같은 명작을 만들어 낸 픽사?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장 에드 캣멀의 책이다. 지금까지의 추천 책이 개인의 창작에 관한 책이라면 ‘창의성을 지휘하라’는 창작의 힘을 제대로 구현해낸 집단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롤러코스터가 종점에 도착하고 좋은 친구가 롤러코스터에서 내렸지만, 참으로 굉장한 체험이었다. 우리는 얼마나 엄청난 여정을 함께 했던가.” 좋은 친구란 스티브 잡스를 말한다. 창조와 창조가 만나 어마어마한 창조로 결합되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창의성의 즐거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창의적인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일하는지를 30년 동안 연구해서 펴낸 책이다. 창의적인 사람들에겐 몰입과 집중, 성실과 신념이 공통적으로 있다는 것인데, 다 읽고 나면 창조가 천재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이 오히려 정답일 수 있다. “나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굉장히 호기심이 많을 뿐이다.”

창작이란 결국 세상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창작이란, 문을 걸어 잠그고 자신만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문을 열고 더 넓은 세계로 뛰어드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창작의 세계로 뛰어들길, 그래서 마음들끼리 더 자주 만나길, 폭력보다 대화가 먼저이길, 서로를 경쟁자가 아닌 동료로 느끼게 되길, 세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창작은 세상을 사랑하게 되는 신비의 묘약이다. 그 동안 ‘창작의 비밀’에 관심 가져준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