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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요양시설, 후진국병 옴 진드기에 무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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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요양시설, 후진국병 옴 진드기에 무방비

입력
2016.10.1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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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생관리 부족ㆍ집단생활 탓에

요양원 거주자 발병, 일반인 22배

병원과 달리 소독 의무 없고

평판 나빠질까 발병 보고도 안해

“위생ㆍ감염병 관리 기준 높여야”

서울 노원구 A요양원에 입소한 치매환자 신모(79)씨는 지난 6월 피부습진과 가려움에 시달렸다. 요양보호사들이 신씨의 증상을 보고 ‘옴’을 의심해 담당 간호사를 통해 알렸지만 요양원 측은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며 확인을 미뤘다. 증상이 한 달 넘게 지속되자 요양원은 결국 7월 말 신씨를 병원에 보냈고 옴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제야 요양원은 부랴부랴 소독을 실시했으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 신씨를 방치하는 동안 옴 진드기가 퍼져 같은 시설에 있던 노인 8명에게 옴이 전염됐고 10여명에게서는 피부발진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장기요양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이 후진국 병으로 불리는 옴으로 신음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법상 요양시설은 소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전염병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옴은 진드기가 피부에 기생하면서 생기는 질환으로 심한 가려움이 특징. 위생관리만 잘하면 쉽게 발생하지 않지만 발병할 경우 전염성이 강하다. 1990년대 들어 거의 자취를 감췄다가 조금씩 늘어나더니 2011년 이후에는 옴 발병자가 매년 4만~5만명을 헤아린다. 노인환자수도 급증해 2007~2011년 80세 이상 옴 환자수는 연평균 31.6%씩 증가했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요양원 노인들은 스스로 청결에 신경쓰기 어려운데다 집단생활을 하는 탓에 옴에 노출될 확률이 더욱 높다. 실제 장기요양시설의 옴 발병은 일반인보다 월등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김광수 국민의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옴 질환 진료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옴 환자수 4만154명 중 3,021명(7.5%)이 장기요양시설 거주자였다. 인구 10만명당 옴 진료를 받은 평균 환자수와 비교하면 요양시설 이용 노인은 1,720명으로 전체 평균인 80명에 비해 무려 22배 가까이 높다.

사정이 이렇지만 요양원들은 사실상 옴에 무방비 상태다. 철저한 소독이 예방의 지름길이지만 노인복지 및 장기요양시설은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정한 소독 의무시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숙박업소나 병원 등은 1년에 2회 이상 전문업체의 소독을 받아야 하며 의무를 따르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반면 요양원은 소독을 게을리하더라도 건보공단이 3년에 한 차례씩 실시하는 평가에서 등급이 낮아지는 것 외에 불이익은 없다. 충북의 한 요양시설에서 일하는 정모(54ㆍ여)씨는 “예산부족을 이유로 직원들이 락스나 세제를 이용해 직접 청소하는 식으로 소독을 대신할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건보공단 조사에서도 최근 3년간 소독 횟수가 연 1회 이하인 시설이 전체 9.6%에 달했다.

옴이 법정감염병에 포함되지 않아 발생 여부를 보건소 등 관련기관에 보고할 의무가 없는 점도 문제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허점을 인식하고 2013년 옴 질환에 한해 시설장이 발병 즉시 관할 장기요양보험운영센터에 신고하라는 행정지침을 내렸다. 복지부 관계자는 “보고가 늦거나 사후처리가 미흡하면 평가 실적이 낮아져 시설이 자발적으로 문제점을 실토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상은 딴판이다. 요양시설들은 실적 악화보다 평판이 나빠져 입소자가 줄어들 것을 우려해 발병 사실을 애써 숨기려 한다. 올해 초 서울 B요양원에서도 80대 여성 입소자가 옴에 걸린 사실이 확인됐지만 요양원은 보호자에게조차 관련 사실을 한 달 동안이나 알리지 않았다.

옴뿐만 아니라 시설 거주 노인들을 감염병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장기요양시설의 위생관리 기준을 높이고 법적의무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행 요양시설 평가제도는 소독횟수 등 정량적 요소에 치우친 일회성 평가에 불과하다”며 “중증 환자가 많은 시설 특성상 위생ㆍ감염병 관리와 서비스 질 수준 개선여부를 지속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추적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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