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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도부수(刀斧手)가 필요하다

입력
2008.11.21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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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리더십이 새삼 주목 받고 있다. 금융ㆍ실물경제 위기를 맞아 외환위기 시절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을 맡아 은행 및 기업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밀어붙인 통찰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조직 장악력이 우리 경제팀에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부실 금융회사와 기업 살생부를 만드는 구조조정은 두둑한 배짱과 뛰어난 통찰력, 국민적 컨센서스가 없으면 안 된다.

이 전 위원장은 부실은행의 셔터를 내릴 때, 정치권 등으로부터 숱한 압력을 받았지만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그는 외부압력에 대해선 방어막을 치고, 금감위 내 구조개혁단을 만들어 퇴출 은행과 종금사 선정을, 민관 합동의 기업구조조정위원회에선 부실기업과 회생가능 기업을 가리도록 했다. 이를 바탕으로 1998년 초부터 불과 수개월 만에 금융회사 퇴출과 인수합병을 전광석화처럼 해치워 국제 금융계로부터 구조조정 모범 사례로 평가 받았다.

주목받는 10년 전 이헌재 리더십

그의 최대 강점은 구조조정의 큰 그림(마스터 플랜)을 세워 원칙대로 집행하면서 이해관계자 등과의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으로 공감을 얻어낸 데 있다. 여론의 향배에 성패가 달렸다고 보고 밤마다 여론주도층과 폭탄주를 마시며 우군으로 활용했다. 한 달 30권 가량의 책을 읽은 독서열은 '내공'을 깊게 만들어 후배 관료들이 그의 지시라면 충직하게 따랐다.

초대형 금융위기 쓰나미가 한국경제를 덮치면서 부실 기업과 금융회사 구조조정 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부상했다. 경제의 혈맥인 은행의 자산건전성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신용경색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란 후 국민의 혈세를 수혈 받아 체력이 튼튼해졌다고 자랑해온 은행들은 외화 차입난, 원화 자금난, 자산건전성 악화, 영업실적 악화 4중고를 겪고 있다. 과도한 외화차입과 외형경쟁의 구태를 보여온 은행들은 자본확충을 통해 살아 남느냐, 먹잇감이 되느냐의 기로에 서있다. 기업들도 건설사를 신호탄으로 잇따라 쓰러지고 있다.

지금처럼 서로를 믿지 못해 돈이 돌지 않는 상황에선 신속한 외과수술만이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 배를 갈라 환부를 신속하게 도려낼 집도의(執刀醫)가 절실한 것이다. 큰 칼이나 큰 도끼로 무장한 도부수(刀斧手)가 나와야 한다. 적들이 몰려오는데도 칼을 휘두르지 않으면 전선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현 경제팀의 문제점은 구조조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데 있다. 이해당사자 등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떨어진다.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해야 할 전광우 금융위원장이나 김종창 금감원장은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1차 외환위기를 본떠 금감원에 기업금융 개선지원단이 발족됐지만, 마스터 플랜과 세부내용이 없다. 부실하기 짝이 없다. 시한폭탄인 건설업체의 대주단 가입 문제도 은행 자율에 맡긴다는 방침이어서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다. 한 금융계 인사는 현 감독당국의 구조조정에 대해 "안개 속에서 골프를 치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지금이라도 구조조정 마스터플랜을 조속히 만들어 시장의 불신을 걷어내야 한다. 관건은 은행 구조조정을 얼마나 신속하게 진행하느냐에 있다. 은행이 병들어 있고, 기업들의 연쇄부도로 건전성 지표가 추가로 악화될 게 뻔하다면 은행부터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

지금은 구조조정 큰 그림도 없어

통화당국은 은행이 자율적으로 자본 확충을 하도록 후순위채 매입 등 각종 지원을 해줘야 한다. 자구노력이 미흡하면 정부는 공적자금을 충분히 집어 넣어 은행시스템의 붕괴를 막아야 한다. 부실기업 처리도 은행에 맡겨선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은행은 부실자산이 늘어날 것을 우려해 회생이 어려운 기업의 퇴출을 미루고, 기업주도 경영권 박탈을 걱정해 대주단 가입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관료들이 소신껏 부실청소를 하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뇌물수수 등 명백한 범죄행위를 제외하고 사후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그래야 관료들이 '변양호 신드롬'에서 벗어나 화재 진압에 나설 것이다.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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