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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은 교수님 사흘은 알바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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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은 교수님 사흘은 알바생"

입력
2015.01.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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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살의 인문학 강사가 박사과정서 겪은 고민 인터넷에 연재 잔잔한 반향

"대학은 4대 보험도 외면, 다치면 누구도 책임 안져

내 글에 공감 많이 늘어 불합리에 맞서 싸워야죠"

위태로운 시간강사의 삶을 기록한 연재물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페이스북 페이지 대표 이미지. 벨기에 초현실주의자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The Son of Man(사람의 아들)'을 연재물 저자의 친구가 패러디해 만들었다.
위태로운 시간강사의 삶을 기록한 연재물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페이스북 페이지 대표 이미지. 벨기에 초현실주의자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The Son of Man(사람의 아들)'을 연재물 저자의 친구가 패러디해 만들었다.

A(33)씨는 인문학을 가르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일주일에 두 번씩 4시간 강의를 하고 강의료로 시간당 5만원을 받는다. 강의 없는 방학을 빼면 A씨가 1년에 버는 돈은 560만원 남짓이다. 그래서 강의 없는 사흘은 맥도날드 창고에 감자박스를 채우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월 40만원을 손에 쥔다. 교수님과 아르바이트생을 오가며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삶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라는 자성이 몰려왔다. 그는 시간강사를 하면서 겪은 고군분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지난해 9월부터 지난달까지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올린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지방시’란 제목의 연재물 19편이다. 지방대 출신으로 2008년 모교 대학원에 들어가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겪은 고민을 담담히 풀어낸 연재물은 대학가에서 적잖은 반향을 불러왔다.

20일 오후 서울 구의동 동서울버스터미널 인근에서 만난 A씨는 실명도, 강의를 하는 대학도 한사코 밝히지 않았다. 좁은 학계에서 신원이 밝혀지는 순간 스승과 동료들로부터 쏟아질 시선이 두렵다고 그는 말했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기는 ‘지방시’에 열렬히 공감하는 독자들도 마찬가지였다. A씨가 월 88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수입과 막막한 일상을 고백하고 학문에 대한 열정 하나로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던 과정을 털어놓은 ‘지방시’ 1편은 8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거 받고 왜 거기 있느냐” “대학원 가기 무섭다” 등 반응도 쏟아졌다. 보상 없는 대학원생의 노동과 이를 외면하는 교수사회, 취직해 부모님께 척척 용돈을 드리는 친구들과 달리 여전히 제 앞가림도 못 하는 자신에게 ‘할 일 없는 놈’이라 타박하는 부모의 한탄까지. 위태로운 시간강사의 삶을 밑바닥까지 까발린 ‘지방시’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오늘의 유머와 별도로 지방시 페이지를 개설한 페이스북에는 좀 더 내밀한 반응이 밀려 들었다. A씨는 “한 대학원생은 ‘(내가 불만이 있다고 생각할까 봐) 선배들과 교수님 눈치가 보여 차마 공감 버튼도 누르지 못했다’는 글을 보내 왔다”며 “댓글 하나 때문에 미래가 막힐 것을 고민해야 하는 곳이 바로 대학”이라고 꼬집었다.

자리를 위한 줄서기와 눈치보기에 급급한 학계에서 A씨는 연구자나 스승으로 대접받기보다 기계적으로 학문을 전수하는 노동자에 가까웠지만 정작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는 보장받지 못했다. 우선 실제로 노동한 시간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한다고 그는 말한다. 강의 준비와 학생 피드백 등에 강의 시간의 갑절 이상 노동력을 쏟아 붓지만 시간강사 시급으로 보상받지 못한다.

대학은 노동자라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4대 보험도 외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4대 보험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챙겨주고 있다. “지난해 맥도날드에서 일하던 중 빗길에 냉동감자를 옮기다 넘어져 팔이 골절됐어요. 매장 매니저는 저를 바로 병원으로 데려가 모든 병원비를 대줬고, 2주간 업무 스케줄을 빼주는 것은 물론, 산업재해보험 보상도 받게 했습니다. 반면 대학원생 시절에는 교수님의 연구실 이전을 돕다가 책더미에 다리가 깔려 병원에 갔지만,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방시’를 연재하며 얻은 것도 있었다. 터무니 없이 적은 조교의 월급을 외면하는 대학원 선배나 사생활까지 챙기며 떠받들어 모셔야 하는 교수 등 그동안 원망했던 대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며 조금 다르게 보게 됐다. A씨는 “시간강사의 현실을 외면했던 선배나 교수들도 외벌이로 생계에 허덕이거나 학생 취업률을 높이는 데에 매달리는 등 나름의 아픔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깨달은 것은 “결국 대학 구성원 개개인의 인성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이 인력을 사용하는 구조가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점이었다. 학문의 가치와 진리를 추구해야 할 대학이 등록금을 받고 비용을 줄여 이익을 추구하려 하면서 강의 행정 연구 등 모든 분야를 비정규직으로 채우게 됐다는 것이다.

A씨는 15일부터 인터넷 대안매체 ‘슬로우뉴스’에 시간강사의 삶을 다룬 ‘지방시’ 2부를 올리기 시작했다. 지방시가 대학가에서 큰 호응을 얻은 이유에 대해 “우리 세대가 쓴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그는 “글을 쓰면서 되새긴 기억으로 더 열심히 강의하고 연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시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수록 불합리에 맞서 함께 싸울 날이 올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다음날 오전에도 아르바이트가 있다며 서둘러 버스를 타기 위해 자리를 떴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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