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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유병언과 사립탐정

입력
2014.07.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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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아직 민간조사원(사립탐정) 제도가 법제화돼 있지 않다. 세계적으로 볼 때 탐정업이 직업 차원을 넘어 산업으로까지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초기에는 개인의 행적이나 평판 등 사적영역의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일을 주로 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 선진국의 탐정들은 변호사 업무를 조력하거나 국민 모두에게 피해를 안겨주는 보험금 부당청구사례탐지, 도피자 및 국외 은닉재산추적, 반인륜적 범죄자 소재탐지와 같은 대중적 측면의 일에 관심을 갖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렇듯 탐정은 개인의 권익구제 수단으로 널리 공인돼 있으면서도 치안 등 공권력의 한계를 보완하는 일에도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좋은 예로 영국(헨리 필링 법관)은 보안관의 적폐(積弊) 해소를 위해, 미국(특별검사 케네스 스타)은 클린턴 탄핵을 위해, 필리핀(정보기관)은 마르코스의 스위스 비자금 추적을 위해 탐정에 정보수집을 의뢰했다. 국가적 쟁점이나 사회적 혼란이 있을 때 국가기관 스스로가 탐정에게 특정정보의 수집이나 사실의 확인을 촉탁해 문제해결의 단서로 활용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정형화한 수사, 정보기관의 활동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간절하고도 유연한 시도일 뿐 아니라 탐정(민간)의 전문성과 문제의식이 결코 공조직에 뒤지지 않음을 시사해 주는 일이라 하겠다.

우리의 경우 지난해 12월 경찰 5,000명을 투입하고도 철도노조 지도부 검거에 실패한 사례나 작금의 유병언 부자 추적과정에서 보여준 검·경의 산만한 작전은 정보의 오류와 함정을 극복하지 못한 결과로 보여질 뿐만 아니라 공권력에 의한 정보활동의 한계를 보여준 교훈이라 할 수 있다. 잠적 중이던 유병언은 5월 25일 검찰 수색 때 통나무 벽안에 1시간50분 가량 숨었다가 사라진 지 18일만인 6월 12일 달아났던 순천의 별장에서 불과 2㎞ 남짓한 거리의 매실 밭에서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백골의 사체로 발견됐다. 얼굴을 드러내놓고 사망해 있었지만 검·경은 유병언이 해남 지역으로 이미 몸을 숨겼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이런 정황을 볼 때 그 동안의 수색과 탐문이 어떤 방향으로 이뤄졌는지, 그를 추적해 붙잡아야겠다는 의지와 고민이 있었는지 의문과 황당함을 금할 수 없다. 유병언과 그를 조력하던 몇몇 사람들에게 교란당한 공권력의 허술함에 통탄해 마지 않는 이유다. 정보의 오류가 얼마나 큰 수사 실패로 돌아오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시신의 부패로 자살인지, 자연사인지, 타살인지 사인을 밝혀내기조차 난망하자 온갖 추론과 의혹이 난무하고 있다. 사망 전 유병언은 범죄의 주체였지만 만약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면 그 순간 범죄의 객체가 된 것이다. 그럴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는 사건이다. 이제 검·경은 또 하나의 범죄의 주체를 가려내야 하는 힘겨운 과제를 떠안게 될지 모른다.

조직적이고 복잡한 대형사건일수록 무엇보다 국민의 제보와 관계기관 간 공조에서 도출된 정보가 수사성패의 관건이 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검·경과 시민이 제각기 자신의 정보와 공로만을 중시한 채 합심이나 공조를 매우 소홀히 한 흔적을 쉽게 읽을 수 있다. 특히 범죄자신고 보상금이 크면 클수록 범인 검거에 유용한 단서가 도처에서 폭발적으로 제보될 것이라는 기대는 빗나갔다. 평소 조그만 것까지 신고를 아끼지 않던 시민들이 거액의 현상금을 타기 위한 결정적 단서 포착에 집착한 나머지 수사기관에서 미리 알았다면 얼마든지 실마리로 삼을 수 있는 첩보마저 자의적으로 판단해 실기하거나 간과해버린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다. 금전적인 제보유인책 보다 사설탐정과 같은 능률적인 프로정신의 직업화가 절실한 시대다.

그 동안 ‘빨리 잡아야 한다’는 국민의 재촉을 받아온 수사기관의 역경과 허탈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사립탐정이 제도적으로 육성돼 있었다면 그들의 열정과 경험이 검·경의 수색과 탐문활동에 적잖게 기여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김종식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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