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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전범 아이히만도 평범한 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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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전범 아이히만도 평범한 개인이었다

입력
2015.07.0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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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의 정체성이 개인에 영향… 악인이 되거나 영웅이 되기도

타인과 적절한 거리 유지하며 연대의식 나누어야 건강한 삶

미국 화가 돈 트로이아니가 그린 ‘베닝턴 전투’. 오합지졸의 모임이었으나 서로에 대한 믿음과 연대가 굳건했던 미국 민병대 그린마운틴보이스는 1777년 베닝턴 전투에서 300여명의 인원으로 수천 명에 이르는 영국군을 궤멸했다. 어크로스 제공
미국 화가 돈 트로이아니가 그린 ‘베닝턴 전투’. 오합지졸의 모임이었으나 서로에 대한 믿음과 연대가 굳건했던 미국 민병대 그린마운틴보이스는 1777년 베닝턴 전투에서 300여명의 인원으로 수천 명에 이르는 영국군을 궤멸했다. 어크로스 제공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슬픈 영화를 혼자 보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볼 때 눈물이 잘 나고, 옳다고 믿다가도 주위의 다수가 그르다고 말하면 생각을 바꾸기도 된다. 사람에게 타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심지어 집단의 정체성에 따라 평범한 사람이 악인이 되기도 하고 영웅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사회적 본성과 집단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건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개인의 정체성과 이타적 행동이 결국 타인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토대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19세기 프랑스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봉은 “사람은 혼자 떨어져 있으면 교양 있는 개인이 될 수 있지만, 군중 속에 있으면 야만인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영국 사회심리학자 스티븐 레이처의 연구를 끌어들여 개인이 군중 속에서 생각 없는 짐승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군중의 사회적 정체성에 따라 행동한다고 주장한다. 전형적인 훌리건으로 규정되는 잉글랜드 축구팬들과 달리 비폭력성을 정체성으로 삼는 스코틀랜드 축구팬이 경찰과 충돌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타인의 영향력' 마이클 본드 지음ㆍ문희경 옮김 어크로스 발행ㆍ384쪽ㆍ1만7,000원
'타인의 영향력' 마이클 본드 지음ㆍ문희경 옮김 어크로스 발행ㆍ384쪽ㆍ1만7,000원

집단의 정체성과 그 내부의 결속력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한 수 있는지는 18세기 독립전쟁 때 미국 뉴햄프셔 그랜트 지역을 지킨 그린마운틴보이스의 사례가 말해준다. 뉴욕주정부의 간섭에 맞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결성된 반란군 그린마운틴보이스는 사냥꾼, 여관 주인, 서기, 시인, 학생, 이민자 등이 모인 오합지졸 부대였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로 끈끈하게 결합해 대규모 영국군을 궤멸했다. 베트남전에서 마을 단위 자위대가 미군의 압도적인 화력에 맞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처럼 동지애는 전투 능률에서 필수적이다.

타인의 강력한 영향력은 평범한 개인마저 악인으로 만들 수 있다. 잘못된 권위에 복종하거나 상황 논리에 동조할 때 쉽게 악한 길로 빠져든다. 나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은 심리 프로파일 결과 정상인에 가까웠고, 자살 폭탄 테러범 역시 대부분 놀라울 정도로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비슷한 상황에서 그릇된 판단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을 지키는 영웅들은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는 뼛속까지 독립적인 사람들인 걸까. 이런 이들 역시 대체로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다. 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르 샹봉쉬르 리뇽 마을 주민들은 유대인을 포함한 망명자들을 독일수용소로 추방하라는 정부의 명령에 불복하고 이들을 피난시켰다. 영화 ‘르완다 호텔’의 실제 주인공인 호텔 지배인 폴 루세사바기나는 르완다 대학살 중 후투족과 투치족 1,000여명을 숨겨줬다. 집단의 영웅적 행동은 공동의 도덕성이나 공감 능력으로 풀이할 수 있지만 개인의 이타적 행동을 부추기는 동기는 훨씬 복잡하다. 어린 시절 습득한 인도주의적 가치관 때문일 수도 있고 외부에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공감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도록 사회화된 교육 때문일 수도 있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 타인과 연대의식을 느끼면서 건강하게 살 수 있지만, 군중 속에 있더라도 사회적 상호작용이 끊긴 상태로 위험하게 살아갈 수 있다. 물리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타인들과 사회적 연결이 끊길 때 인간이 크게 약해진다는 점에 저자는 주목한다. 우리에게 본질적인 사회적 충동과 취약성을 다스리고 목적에 맞게 적절히 활용하기만 한다면 개인과 사회는 더 풍요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믿음이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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