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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선물 하나 없어?… 문제는 아이들이 아닌 달라진 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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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선물 하나 없어?… 문제는 아이들이 아닌 달라진 나였어

입력
2015.05.0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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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조알 선생의 교실풍경 1~4 이성수 지음 휴머니스트 발행 | 120~136쪽| 각권 9,000원
타조알 선생의 교실풍경 1~4 이성수 지음 휴머니스트 발행 | 120~136쪽| 각권 9,000원

스승의 날, 고교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타조알 선생은 은근한 기대감에 차 있다. 수업 시간에도, 종례 시간에도 아무리 기다려도 반 아이들은 쪽지 하나 주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선물 하나 없다니.’ 어깨가 축 처진 타조알 선생에게 전년도 반 아이들이 조촐한 축하를 해준다. 지금 반 아이들이 문제라고 생각한 타조알 선생은 며칠 뒤 오래 전 학급신문을 읽으며 자신이 지금 반 아이들에게 해준 게 별로 없다는 걸 깨닫는다. ‘문제는 달라져 버린 나였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8컷 만화 사이사이 담긴 삽화에는 유독 엎드려 자는 학생들의 모습이 많다. 휴머니스트 제공
8컷 만화 사이사이 담긴 삽화에는 유독 엎드려 자는 학생들의 모습이 많다. 휴머니스트 제공

부산중앙여고에 국어 교사로 재직 중인 이성수(42)씨가 펴낸 네 권의 만화책 ‘타조알 선생의 교실풍경’에 담긴 에피소드다. 스승의 날을 맞아 교사가 느끼는 기대, 실망, 반성이 여덟 컷 만화 2편에 잘 드러나 있다. 이처럼 이씨가 2001년부터 2014년까지 14년간 서울과 부산 등의 중ㆍ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겪은 소소한 일상, 황당한 에피소드, 교육자로서 느끼는 문제점 등이 빼곡히 담겼다.

이 만화책은 국어교사 모임이 발간하는 계간지 ‘함께 여는 국어교육’에 저자가 2006년부터 연재한 여덟 컷 만화를 묶은 것이다. ‘타조알’은 짧은 머리에 동그란 외모 때문에 생긴 별명. 1권은 2007년 출간된 책을 다시 낸 것이고 2~4권은 이번에 처음으로 나왔다.

학교라는 배경 때문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얘기가 가득하다. 아이들은 1교시만 끝나면 매점으로 달려가고 수업시간엔 잠만 자며 시험 답안을 아무렇게나 찍고 자버린다. 수학여행을 가면 친구들과 술을 마시려 꾀를 부리고 졸업식에선 여지 없이 밀가루와 날계란으로 아수라장이 된다. 아날로그 시대에 학교를 다닌 독자라면 학생이 선생님에게 발신자 표시 없이 ‘샘 저 보고 싶죠?! 저 누구게요? 메롱! 바보!’ 같은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는 사실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좋은 교사가 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란 걸 책 여기저기서 실감하게 된다. 타조알 선생은 이어지는 야간자율학습에 지쳐 잠을 자는 학생이나 답을 찾을 수 없는 시험지 앞에서 자학하는 아이를 안쓰럽게 바라본다. 기말고사가 끝나 더 이상 가르칠 게 없을 땐 자습을 시키고픈 유혹에 빠지고,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려 아이를 때린 뒤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말과 글은 대단한데 실천을 하지 않으십니다’ ‘우유부단하시고, 강해야 할 때 약합니다’ 같은 평가를 학생들에게 듣고 부끄러움을 느낀 적도 있다.

개학, 수업, 자율학습, 시험, 소풍, 방학 등 학교는 늘 같은 걸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조금씩 다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다르고 서울과 부산이 다르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다르다. 이성수씨는 자신이 교사로서 겪은 일은 물론 주위 동료 교사들의 경험담까지 채집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다채로운 에피소드를 풀어냈다. 전교조를 지지하는 내용의 에피소드도 있다. 학생 때 “수업시간에 졸리거나 지루하다 싶으면 교과서나 공책 여백에 낙서를 하며” 시간을 보낸 경험이 교사라는 전문성을 만나 이 책을 만들어낸 것이다.

여덟 개의 네모 칸에 담긴 그림은 자세한 배경 묘사도 없어 대충 그린 듯 보이지만 작은 선 하나가 표현하는 감정, 단순하면서도 귀여운 인물 묘사, 재치 넘치는 글, 따뜻한 정서에 중독되다 보면 책을 손에서 떼기 어려워진다. 이 책이 가벼운 만화로 읽히지 않는 건 학원물 특유의 유쾌한 이야기들 속에서도 교사의 자기 성찰, 학교 교육의 문제점 등을 꼬집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애도ㆍ존경ㆍ사랑ㆍ우정ㆍ감동ㆍ열망 등 학생들이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 볼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게 내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라며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교사 개개인이 어떻게 아이들 앞에 설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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