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메아리] 우리에게 개성공단은 무엇이었나

입력
2016.02.12 20:00
0 0

이질감 있어도 소통하는 공간

긴장 고조돼도 상대방 다독여

가동 멈춰 화해의 실마리 실종

개성공단 가동이 전면 중단된 12일 강원 철원군 최전방 백마고지역에 자욱한 안개가 끼어 있다. 연합뉴스
개성공단 가동이 전면 중단된 12일 강원 철원군 최전방 백마고지역에 자욱한 안개가 끼어 있다. 연합뉴스

개성공단이 문을 닫았다. 힘들게 만들어 어렵게 가꿔온 개성공단이 남북한의 강경대립 속에서 침몰해 버린 것이다. 북한의 표정이야 알 수 없지만, 대책을 찾겠다며 모인 개성공단기업협회 관계자들의 황망하고 침울한 얼굴과 북한의 추방조치로 깜깜한 밤 중에 쫓기듯 공단을 빠져 나오는 차량의 행렬에서 착잡함과 분노가 묻어난다.

개성공단을 처음부터 불온하게 보았던 사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개성공단 사업을 퍼주기로 여겼고 북한이 핵실험과 로켓 발사에 나설 때마다 “이럴 줄 알았다”며 자신들이 옳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러 통계와 증언을 보면 이는 실제와 차이가 크다. 통일부 발표만 보아도 지난해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으로 유입된 돈이 1억1,000만 달러였던 반면 124개 입주 기업의 매출액(1~11월)은 5억1,549억 달러에 달했다. 절대액수만 보면 남한의 이익이 훨씬 많다. 우리가 입는 속옷이나 아웃도어 의류도 대부분 이곳에서 생산했다. 개성공단은 그만큼 우리 가까이에 있었던 것이다.

개성공단이 일시 폐쇄됐던 2013년 입주 기업인들은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등을 돌아본 뒤 “개성공단만큼 가격경쟁력 있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노사관계로만 보면 개성공단은 사용자에게 매력적인 사업장이었다. 남한 진보 진영 일각에서 “개성공단을 세운 것이 보수가 한 일이라면 이제 진보는 그 공단에 민주노조를 세워야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퍼주기가 아니라 퍼왔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다.

개성공단에서 북한 종업원과 일을 함께 해본 남한 주재원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 더 더욱 실감난다. 김진향 카이스트 교수 등이 지난해 6월 출간한 ‘개성공단 사람들’에는 남한 주재원과 북한 종업원이 함께 일하는 생생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북한 종업원들은 처음에 남한 주재원을 잔뜩 경계하지만 시간이 지나 친해지면 자신의 남편을 흉보고, 일회용 밴드나 진통제 같은 약품을 구해달라고 수줍게 부탁하며, 아이 사진을 보여달라고도 한다. 남녀가 모이는 곳이라 남북한 연애담도 돌았다. 그렇다고 거리감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어서 격의 없는 대화를 하기에는 조심스러웠다. 이렇게 이질적인 사고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상대를 알고 이해하는 공간이 바로 개성공단이었다.

그런 개성공단이 폐쇄의 길로 접어든 이유가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국제사회의 경고를 무시한 북한에 책임을 묻는 것도 당연하다. 문제는 그것이 하필 개성공단의 가동 중단이냐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밝힌 두 가지 기대효과 즉 북한의 핵ㆍ로켓 자금 차단과 중국 등의 대북 제재 유도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대외무역으로 연 70억~80억 달러를 버는 북한이 연 1억 달러 수준인 개성공단 임금이 없다고 해서 무기 개발을 중단할 것 같지는 않다. 중국의 대북 제재를 유도하겠다면 개성공단의 가동 중단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배치를 피하는 게 효과적이다. 당장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11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만나 사드 배치를 강하게 반대하면서도 대북제재 동참의 뜻은 밝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을 멈춘 진짜 이유를 궁금해한다. 차마 지지층 결집을 위한 내부용 카드라고는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절대 아니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제재라고 하면 무기 개발을 막는 등 북한 정권에게 고통을 줘야 할 텐데 이번에는 도리어 개성공단에 입주한 남한 기업과 거기 기대 살아가는 사람들이 입을 피해가 막대하다.

개성공단은 이제껏 남북 협력의 상징이었다. 천안함 사건으로 긴장이 고조됐을 때 북한 종업원들은 “이럴 때 일수록 밥도 더 잘 먹고 집에 전화도 더 자주 하십시오”라며 주재원들을 다독였다. 그런 개성공단이 멈춘 것은 남북한의 갈등과 미중의 패권쟁탈전이 겹쳐 일어나는 이 극단의 시대가 지나간 뒤 마침내 새롭게 모색할 화해의 가능성마저 날려버린 것 같아 더욱 씁쓸하다.

/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