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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의법치국’과 홍콩의 ‘우산’

입력
2014.10.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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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우산시위’가 지난달 28일 시작되고 며칠 뒤 대만에서 열리는 한 국제회의에 참가하게 됐다. 회의와 저녁을 마치고 숙소로 이동하는데 건너편 광장에서 환한 불빛 아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자 옆에 있던 대만 교수가 대만인들이 홍콩의 시위를 지지하기 위해 모인 집회라고 설명해줬다. 그날 저녁 대만의 학자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갔는데 홍콩 시위에 많은 관심과 지지를 보내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커다란 파도같이 밀려오는 중국의 영향력에 대해 크고 작은 불안감과 거부감을 내보이는 것 같이 느껴졌다. 중국이 홍콩의 통치원칙과 대만과의 통일원칙으로 내세워온 ‘일국양제(一國兩制)’에 대한 실망감이 주요한 원인 같아 보였다.

홍콩의 시위가 시작된 지 10여 일이 지나자 중국 정부와 대만 정부의 시각차가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10월 10일 마잉주 대만 총통은 건국기념일 연설에서 민주주의와 법치는 서구사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권리라고 주장하며 중국에게 민주주의의 길을 가라며 일침을 놓았다. 하지만 다음날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1989년에 천안문 사태를 규정했던 것과 같이 홍콩의 시위를 ‘동란(動亂)’으로 규정했다.

다시 10일 정도가 지나자 중국에서는 ‘의법치국(依法治國)’을 내세운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가 개최됐다. 법에 입각한 국가의 통치를 위해 행정제도 개혁, 그리고 사법부와 검찰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이를 다시 개혁과 부패 척결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중국 지도부의 노력과 분투가 돋보였다. 하지만 중국의 지도부는 ‘일국양제’로 통일을 추진하겠다고 다시금 천명하며 홍콩의 사태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였다.

홍콩 시위에 대한 이런 중국 지도부의 모습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 그간 미국과 서구국가들은 중국에게 인권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요구하며 양측 간에 많은 논쟁을 거쳐 왔었다. 인권이 미국이라고 사각지대가 없는 것이 아니며, 서구사회라고 민주주의가 완벽한 제도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또한 서구식 제도가 모든 면에서 중국의 제도보다 우월하다고 보는 것도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의 저자 마틴 자크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중국의 제도는 78년 개혁ㆍ개방 이후 지난 30년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은 개혁과 발전을 이끌어온 반면, 미국식 민주주의는 그 사이 기능장애, 단기적 양극화, 소수의 기득권층에 휘둘리는 문제점들이 증가해 왔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중국의 입장도 이해가 가는 면이 있다. 13억명이 넘는 인구가 한족과 55개의 소수 민족으로 이뤄진 중국은 소수민족 문제가 심각하다. 만약 홍콩에서 서구식 직접 자유선거가 허용된다면 티베트와 신장은 물론 안정적인 다른 소수민족 지역에서도 자신들의 대표를 자신들이 선출하려 할 것이며, 나아가 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나려 하거나 최악의 경우 분리 독립의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 따라서 중국정부는 입후보 자격에 제한을 둔 직접선거가 중국의 국가분열 사태를 막으며 홍콩에 허용할 수 있는 최대의 양보라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의 요구도, 중국의 입장도, 홍콩의 외침도, 대만의 반응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유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글로벌 리더로 나아가는 중국이 국내문제에만 지나치게 치우치는 모습은 매우 안타깝다. ‘의법치국'으로 국내 기득권의 부패척결과 개혁에 사활을 거는 중국 지도부가 인류와 국제사회가 세계 각지에서 많은 희생과 실패를 거듭하며 기득권과 부정부패에 대항해 이뤄온 제도와 가치를 국내적인 이유로 부정한다면 이는 많은 이들에게 독선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것은 국제사회가 미국과 서구 국가들이 이끌어온 제도와 기준의 문제점들을 중국이 새로운 해법을 제시해 기존의 인류 보편적 가치와 제도를 더욱 발전시켜 주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중국의 것으로 대체하려고만 한다면 중국은 강국은 될 것이나 진정한 리더국은 되지 못할 것이다. 중국은 ‘의법치국’과 같이 홍콩에서도 그간의 리더십과 업적을 바탕으로 큰 걸음을 내디뎌야 했었다.

김한권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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