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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적자나도 ‘매출 15%’ 수수료는 따박따박 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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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적자나도 ‘매출 15%’ 수수료는 따박따박 떼간다

입력
2017.04.0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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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브랜드’ 힘 빌리려다

인사ㆍ재무 권한까지 다 넘어가

10~20년마다 한 번꼴 재계약

협상 노하우 없어 불리한 계약

“골리앗 체인에 홀로 상대는 벅차”

공동대응 협의체 구성도 추진

워커힐 전경사진. 워커힐호텔 제공
워커힐 전경사진. 워커힐호텔 제공

“돈 벌 생각이라면 호텔은 결코 하지 말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서울의 특급호텔 대표를 지낸 A씨는 2일 “한국에선 재벌이 아닌 다음에야 호텔을 운영하기 힘들다”며 “이는 글로벌 호텔 체인과의 불공정한 계약 등 돈을 벌 수 없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급성장한 국내 관광시장의 미래 가능성을 보고 호텔산업에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보는 사업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와 같은 예기치 못한 외적 변수와 함께 호텔이 너무 늘어나 과포화상태인 시장도 문제지만, 세계적인 호텔 브랜드 체인과 맺은 구조적으로 불공정한 계약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모르고 사인한 ‘신탁통치’ 계약에 울분

호텔 사업자들이 아코르, 메리어트, 힐튼, 하얏트, 인터컨티넨탈 등 글로벌 유명 체인과 계약을 맺는 건 이들 브랜드의 이름값 때문이다. 글로벌 체인들은 또 그들만의 예약망을 갖춰 영업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국내 특급호텔의 경우 대기업이 운영하는 롯데와 신라, 더 플라자 등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호텔이 글로벌 체인의 이름을 내걸고 운영하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혹독했다. 이들은 글로벌 체인을 ‘파트너’라고 믿고 계약서에 사인했지만, 막상 호텔 운영이 시작된 뒤에야 갑을 관계가 확연한 ‘신탁통치’ 계약임을 깨닫게 된다. 호텔이 적자가 나도 수수료는 꼬박꼬박 빠져나가는데다, 체인에서 보낸 총지배인이 인사 재무 권한까지 독차지하다 보니 오너의 좌절감은 더욱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송홍섭 전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 대표는 “외국의 글로벌 체인과의 계약 이후 실제 얻는 혜택 보다 더 많은 돈을 내주는 것 같다. 내용을 잘 모르고 계약했다가 뒤늦게 현실을 깨닫고 상실감을 느끼는 호텔사업자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증권사에 다니다 13년 전 호텔에 들어왔다는 송 전 대표는 “1988년 호텔이 문을 연 이후 15년 간 브랜드 체인인 ‘인터컨티넨탈 호텔 그룹(IHG)’에 준 돈이 1억달러(1,114억원)에 달해 깜짝 놀랐다”며 “호텔리어가 아닌 비즈니스맨의 시각으로 볼 때 불공정한 게 참 많았다”고 말했다.

A씨는 “5년 마다 계약을 조정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글로벌 체인이 장기 계약이 아니면 계약을 체결하려 들지 않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객실 운영이나 판매 등엔 그들의 노하우를 인정하지만 식음이나 연회, 피트니스 분야까지 체인의 결정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체인에 제공하는 수수료는 호텔의 비용 항목 중 인건비 다음으로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보통 매출의 8~15%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한번 계약하면 짧으면 5년, 길게는 20년 이상 종속되다 보니 경기가 좋지 않을 경우 매달 빠져나가는 수수료의 부담이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체인에 내는 수수료는 주로 브랜드 이름과 로고의 사용에 대한 대가와 체인이 보유한 마케팅 자산과 운영시스템, 예약망의 사용에 대한 비용이다.

강원 평창의 알펜시아 리조트 소유주인 강원도개발공사는 ‘인터컨티넨탈’과 ‘홀리데이인’ 브랜드를 지닌 IHG와 경영위탁 계약을 체결한 이후 공사 이사회와 강원도의회 등으로부터 오랫동안 부당한 계약을 왜 체결했느냐는 질책을 받아야만 했다. 알펜시아 리조트 관계자는 “도의회에서 그런 ‘노예계약’을 왜 계속 유지하느냐고 추궁해 계약 해지를 검토한 적도 있다”며 “계약 해지에 따른 페널티 비용과 인테리어 교체 비용 등이 남은 계약 기간의 예상 수수료 총액 보다 높게 나와 결국 포기했다”고 말했다.

호텔사업자들이 계약 조건들을 충분히 따져보지 못하고 계약했다가 뒤늦게 세부 항목이 부당한 것을 깨닫고 소송으로 확산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올 하반기 개장할 A호텔은 한 글로벌 체인과 당초 계약조건을 놓고 현재 분쟁 중이다. 호텔측은 “ ‘파트너십’을 믿고 2년 전 계약을 체결했는데 주요 시설과 장비에 대한 감가상각과 호텔 건축에 들어간 금융이자가 비용 항목에 포함되지 않은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며 “이대로라면 호텔은 계속 적자에 시달려도 체인은 이익이 난 걸로 간주해 고가의 수수료를 가져가는 불공정한 구조라 계약 조건 변경을 요구 중”이라고 말했다.

몰라서 당한다, 알면 바꿀 수 있다

호텔사업자들은 글로벌 체인과의 계약 협상이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가장 큰 이유는 계약과 관련한 정보의 비대칭이다. 글로벌 체인들은 매년 수백 건의 계약을 체결해온 경험과 전문인력이 있지만 호텔사업자는 처음이거나 10~20년에 한번 하는 재계약이다 보니 협상의 노하우가 크게 부족하다.

송 전 파르나스 호텔 대표는 재계약을 협상하기 위해 2007년 싱가포르의 IHG 아시아본부를 찾아갔을 때의 난감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파르나스 호텔 측은 재계약을 통해 좋은 조건을 얻어내고 싶었지만 IHG측은 이전 계약의 조건 그대로를 고수하며 만나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낸 꾀가 ‘이이제이(以夷制夷)’였다. 파르나스 측은 힐튼, 하얏트, 페어몬트, 스타우드 등 다른 글로벌 호텔 체인들에게 ‘서울 삼성동에 있는 특급호텔이 2010년 IHG와 계약이 만료되니 같이 할 의사가 있느냐’고 제안서를 돌린 것이다. 실제 힐튼과 페어몬트 등에선 큰 관심을 보였고 협상도 꽤 깊이 있게 진행됐다. 그제서야 IHG는 입장을 바꿔 원하는 조건을 들어주겠다며 매달리기 시작했다. 결국 파르나스 호텔은 오랜 협상 끝에 수수료를 40% 줄이고, 인사 재무 등 경영권을 가져오는데 성공한데다, 호텔의 이름에 먼 미래 독립의 기반이 될 ‘파르나스’를 명기할 수 있게 됐다.

파르나스 호텔과 알펜시아 리조트 등은 글로벌 체인과 혼자 상대하는 건 힘에 벅차니 함께 힘을 모아 맞서자며 IHG를 상대로 하는 공동대응 협의체 구성도 추진했다.

이슬기 세종대 호텔경영학과 교수는 “보통의 계약 조건 상 적자가 나더라도 체인에 로열티를 지급해야 해 호텔로선 난감할 수 있다”며 “외국에 비해 한국에선 체인의 수수료율이 상대적으로 높으며 인센티브와 계약파기 등에 대한 조건도 호텔 사업자에게 불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호텔산업이 발전한 북미 등엔 호텔 설립과 계약과 관련한 전문 경영인들과 전문 변호사들이 즐비한 반면, 국내의 경우 계약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지 않고 법률적 검토가 소홀하다 보니 불합리한 계약체결에 내몰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호텔업협회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글로벌 체인이 갑의 입장이라 호텔사업자는 억울하다고 느낄 부분이 있다”며 “불공정한 계약이라 하더라도 체인을 통한 고객 확보의 이득이 없지 않으니 손익을 잘 따져 계약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원 선임기자 sungwon@hankookilbo.com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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