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부자 되고 싶었지만… 석수장이 아빠가 최고였네!

입력
2016.04.22 19:18
0 0
어린 아들이 “그까짓 석수장이”를 내뱉거나 말거나 묵묵히 일하는 아버지의 바지저고리에는 기운 자국이 선명하다. 창비 제공
어린 아들이 “그까짓 석수장이”를 내뱉거나 말거나 묵묵히 일하는 아버지의 바지저고리에는 기운 자국이 선명하다. 창비 제공

석수장이 아들

전래동요ㆍ권문희 그림

창비ㆍ48쪽ㆍ1만1,000원

요즘 아이들 장래 희망이 건물주라는 말에 퍼뜩 이 책이 생각났다. 1952년에 채록된 전래동요를 토대로 만든 그림책이다.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석수장이 아들 보고 동무 애가 물었네. 너두 너두 이담에 커서 석수장이 되겠수” 석수장이 아들이 냉큼 말을 받는다. “그까짓 석수장이” 나는 이담에 “아주아주 부자가 되어 사냥이나” 다닐 테다. 두 세대, 아니 그보다 훨씬 전에 살았을 아이의 장래 희망 또한 일하지 않고 슬슬 사냥이나 다니는 유한계급이다.

서로 말꼬리를 잡으며 두 아이가 입씨름을 벌인다. 네가 사냥하러 다니면 나는 해가 되어 땀이나 줄줄 흘리게 하지, 그럼 나는 구름이 되어 해를 가리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겯고틀다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 자기 부정에서 자기 긍정에 이르는 순환 구조와 주요 모티프가 ‘사윗감 찾아 나선 두더지’ 설화와 흡사하다.

사건도 없고 시공간도 분명치 않은 말놀이 노래에 그림책 작가 권문희가 그림으로 서사를 입혔다. 깡! 깡! 돌을 쪼는 아버지 옆에서 어린 아들이 “그까짓 석수장이”를 내뱉고, 그러거나 말거나 묵묵히 일하는 아버지의 바지저고리에는 기운 자국이 선명하다. 아들에게 석수장이란 고단한 노동과 누추한 차림일 뿐이다.

무림의 고수들처럼 합을 주고받는 꼬맹이들이 익살스러운 모습을 드러낸다. 노랑과 파랑 색감으로 대조를 이루며, 해로 구름으로 바람으로 호랑이로 환상적인 변신술을 뽐내며 어린 독자들을 매혹한다. 대범한 구도와 분방한 선이 활기차다.

바위가 되겠다는 동무의 말을 바위 부리는 석수장이가 되겠다고 받아친 뒤 아이는 아버지를 바라본다. “아니, 내가 말을 잘못했다” 노래는 아이의 반성으로 끝나지만, 그림책은 일을 마치고 흐뭇한 얼굴로 땀을 씻는 아버지와 아버지가 만든 돌장승을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노동의 의미와 인간의 본질을 탐색한다. 돌장승은 우리를 지키는 수호신, 우리가 있는 곳을 알려주는 이정표,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소망이 담긴 미륵불이자 우리 자신의 얼굴이다. 이 그림책은 우리에게 정과 망치를 쥐고 세계와 자기 자신을 깎고 다듬고 만들어가는 인간, 호모 파베르를 보여준다.

설마 이 책을 대물림 되는 흙수저의 정신승리담이나 ‘분수’와 ‘자족’을 내세워 불평등한 현실을 눈가림하는 교훈담으로 읽는 이는 없겠지. 시절이 하 수상하니 별 생각을 다 한다.

최정선 어린이책 기획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