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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일본인이 본 이순신

입력
2014.08.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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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장군이 전투를 독려하다 적의 유탄에 어깨를 맞아 피가 흘렀다. 그는 아무 말 하지 않다가 전투가 끝난 뒤에야 칼로 살을 찢고 탄환을 뽑았다. 보는 사람들은 모두 낯빛이 변했지만 장군은 담소를 나누며 태연자약했다.’ 일본에서 19세기 중반 간행된 조선정벌기에 묘사된 이 용맹한 장수는 이순신 장군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순신 장군의 그림은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손에는 여포가 사용한 무기인 방천화극이 쥐어져 있다. 당시 일본인들에게 이순신이 얼마나 공포스런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 임진왜란 당시의 일본 자료에는 이순신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왜란 직후만 해도 일본은 일방적인 승리로 미화하는 경향이 강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이어 도쿠가와 이에야스 막부도 임진왜란을 다룬 내용의 출판을 엄격히 통제했다. 그러나 서애 유성룡이 집필한 징비록이 1695년 일본에서 출판돼 지식인 사회에서 널리 읽혀지면서 평가가 달라졌다. 이 책에는 이순신 수군이 임진왜란 중 수행한 역할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임진왜란의 전모가 알려졌고 이순신은 조선의 명장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 근대 들어 일본에서의 이순신 평가는 부담스러울 정도다. 1900년대 초 일본 역사가 후지이 노부오의 이순신 각서에는 일본 해군의 영웅 도고 헤이아치로 제독이 이순신을 존경하며 스승처럼 여겼다는 기록이 있다. 일부 일본 전쟁사학계에서는 러시아 발틱함대를 격파시킨 도고의 전략 ‘정(丁)자 진법’이 이순신의 학익진에서 비롯됐다는 학설을 제기했다. 일제 때 진해에 주둔한 일본 해군이 매년 이순신 진혼제를 열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일본의 이런 분위기는 일제의 통치 이념인 내선일체 사상이나 대동아공영론과 무관치 않다.

▦ 영화 ‘명량’을 계기로 이순신 열풍이 불고 있다. 리더십 부재의 시대적 상황이 흥행 요인이지만 인간 이순신의 고뇌를 다룬 점도 흡입력을 높였다. 150여 종에 달하는 이순신 서적 중 요즘 많이 찾는 책도 이순신의 내면을 다룬 것들이다. 개인을 전장으로 밀어 넣는 혼란과 고통 속에서 이순신이 겪는 실존적 고뇌가 이순신 리더십의 요체라는 관점이다. 이순신은 박정희 시대의 체제 구축에 이용되면서 신격화됐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순신을 신화에서 역사의 영역으로 과감히 옮겨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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