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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불행과 분노는 저 잘난 남동생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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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불행과 분노는 저 잘난 남동생 때문인 것 같다

입력
2014.12.1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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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해던 지음ㆍ김지현 옮김

비채 발행ㆍ400쪽ㆍ1만4,000원

가족은 우리의 거의 모든 것이다. 가족의 사랑만이 마침내 우리를 구원한다는 ‘가족애 근본주의’ 같은 걸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의 뒤에는 집이 있다. 배후는 언제나 집이다”라는 소설 속 구절처럼, 가족은 작금의 나를 형성한 가장 중요한 질료이자 원형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향한 갈망과 인정투쟁, 우애와 술수, 연대와 계략, 헌신과 계산, 이 모든 것이 뒤엉킨 모질고도 질긴 관계망. 상처는 언제나 거기에 있다.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으로 유명한 영국 소설가 마크 해던(사진)의 세 번째 장편소설 ‘빨간 집’은 20년 만에 얼굴을 마주한, 애증으로 얼룩진 한 남매의 이야기다. 알코올 중독과 치매를 앓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부유한 의사인 남동생 리처드는 교사로 일하며 힘겹게 가장 노릇을 하고 있는 누나 안젤라에게 돌연한 가족여행을 제안한다. 돈 걱정 없이 “조지 엘리엇이나 제인 오스틴이 살았을 것 같은” 웨일스 헤이온와이의 저택에서 일주일을 보낼 수 있는 기회지만 안젤라는 성인이 된 후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본 적 없는 동생네가 불편하기만 하다. “무엇이든 가차 없이 성공하는 저 잘난 남동생”은 5년간 어머니의 요양병원비를 댄다는 이유로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건만, 어머니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찾아가 자신을 돌봐준 딸은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한 채 아들만을 그리워했다.

끝내 어머니에게 인정도, 사랑도 받지 못했다는 억울함, 저 혼자 살겠다고 진창 같은 집구석에 자신만 남겨놓은 채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가버리고도 한번도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은 동생에 대한 분노는 현재의 불행하고 갑갑한 삶을 야기한 근본적 원인으로 자주 소추된다. 하지만 동생이라고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폭력적이었던 아버지가 죽은 후 알코올에만 의존했던 어머니를 돌봐야 했던 건 고작 열세 살이었던 리처드였다. 한 살 위의 누나는 우정의 세계로 떠나버려 친구 집에만 머물었고, 어린 소년은 5년간 알코올중독자 어머니를 책임져야 했다. 그러나 기억은 교묘하게 편집된다. 안젤라는 리처드의 배반만 힐난할 뿐, 자신의 배반은 기억조차 못한다.

소설은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처럼 두 가족, 여덟 명의 식구에게 공평하게 시점을 배분한다. 주인공을 특정하기 어렵게, 어린 소년 벤지에게까지 균등하게 시점을 분배해, 등장인물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를 기탄없이 쏟아내도록 만든다. “합창곡과도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다. 생생한 캐릭터를 가능하게 한 이 다성적 서사구조는 섣부른 화해를 추구하지 않도록 제어한다는 점에서 민주적이기도 하다. 용서와 화해라는 것은 한편으론 억압적인 것이어서, 우리는 가족소설의 상투적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해서는 안 된다. 이 정도의 이해와 양해만으로도 충분하다. 가족이기 때문에 더더욱.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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