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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가문의 궤적 추적… 독일 근현대의 민낯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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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가문의 궤적 추적… 독일 근현대의 민낯 조명

입력
2016.01.29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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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비평가 발터 벤야민.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예 비평가 발터 벤야민. 한국일보 자료사진

벤야민, 세기의 가문

우베 카르스텐 헤예 지음ㆍ박현용 옮김

책세상 발행ㆍ404쪽ㆍ2만원

독일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1892~1940)은 지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가 고안한 ‘아우라’ ‘성좌’ ‘정지상태의 변증법’ 같은 수많은 개념, 어떤 학파에도 포섭되지 않는 독창적인 사유와 글쓰기 방식은 출판계 패션이 됐다. 당대의 현실에서 철학적 장면을 포착해 예민한 글로 남겼는데 그의 이런 방법은 하지만, 역설적으로 현재의 한국 독자들이 그의 글이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우리는 벤야민처럼 1930년대 파리 아케이드를 거닐 수 없으니까.

‘벤야민, 세기의 가문’은 그와 그 가족들의 궤적을 추적한 책이다. 기존 벤야민 관련 저서들이 아도르노, 한나 아렌트, 게르솜 숄렘 등 동료와의 관계나 20세기 초반 프랑스 파리를 통해 벤야민의 지적 여정을 그린 것과 달리, 이 책은 발터 벤야민 일가 3세대를 통해 독일 근현대상을 그려냈다.

베를린의 대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난 삼남매 발터와 게오르크(1895~1942) 도라(1901~1946)의 삶은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변한다. 알려진 것처럼 철학, 독문학, 미술사를 공부하고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던 발터는 1923년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교수자격심사 논문인 ‘독일비애극의 기원’을 제출했다가 너무 어려워 “단 한 줄도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논문 심사 철회를 요구 받은 뒤 학계와 담을 쌓은 채 독자적인 사유 체계를 만들어 간다. 1940년 나치 점령지가 된 파리에서 피레네 국경을 넘으려다 국경 통과가 실패하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남동생 게오르크는 소아과 의사이면서 공산당원으로 나치 수용소에서 최후를 맞았다. 대학 나온 여성이 드물던 시잘 경제학 박사학위까지 받았던 여동생 도라는 여성 노동자들의 삶의 개선을 위해 싸우지만, 망명 시절 가난에 시달리다 객사했다.

책은 도라의 친구이자 게오르크의 아내인 힐데를 집중 조망한다. 아리아인으로 유대인인남편의 죽음을 목도한 힐데는 전후 동독 여성 법무부 장관을 지내며 나치 가담자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한 잔혹한 인물로 각인됐다. 책은 이런 오인을 바로잡고 그녀의 업적을 정당하게 평가하려 노력한다.

‘벤야민가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피의 20세기에 발을 담그는 것을 의미한다. (…)세기 전환기에 태어난 그들은 출생 신분과 훗날 얻은 신념으로 인해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을 떠안으려 했다.’ 나치의 파시즘과 민족주의적 광기의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에서 인간적인 세상을 꿈꾸며 저항 정신을 잃지 않았던 벤야민 일가의 이야기는 ‘지금 여기’에도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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