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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다큐/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센터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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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다큐/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센터 르포

입력
2011.05.23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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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5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 너무 참혹해서 보고 있기 힘든 사진들이 계속되고 낯 익은 의사가 설명을 이어갔다.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과 함께 회자되던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센터장 이국종(43) 교수다. 스타로 여겨지던 그가 쉴 틈 없는 설명으로 호소하고 있었다. "몇 개의 권역외상센터를 세우고 환자 이송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의사가 부족해 트레이닝이 시급하구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허윤정 전문위원에게 우리나라에 외상외과 의사가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고 했다. 그러면서 허위원은 "외상외과는 아무런 도움도 없고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분야인데 오히려 이국종 교수가 독특한 케이스"라고 덧붙였다.

5월2일 이국종 교수를 다시 만난 곳은 아주대병원 수술실 8번방. 공사장에서 추락해 목 부위에 심한 상처를 입은 환자를 수술하고 있었다. 이 교수는 스태프들과 함께 피부를 접합하는 마지막 시술까지 마치고서야 수술실을 나왔다. 대신 해줄 수련의가 없기 때문이다.

그 날 그 방에서 본 의사 3명이 국가대표급이라는 아주대 중증외상센터 전문의 전부다. 센터 한 구석에 게시된 당직표에는 팀장으로 이 3명의 이름만 반복되고 있다. 당직이 아니어도 퇴근은 없다. 언제 중증외상 환자가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린이날에도 어버이날인 일요일에도 그들은 귀가하지 못했다.

며칠 뒤 피곤을 이기지 못한 붉은 눈으로 얘기하던 이국종 교수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사명감 같은거 없어요. 그냥 하는겁니다. 근데 힘들어요...못하겠어요". 10년간 수술 회수 1,300여건, 하루 7건의 수술을 한 적도 있다. 큰 뜻을 품고 전문의 수련을 받던 후배들도 1년을 배기지 못하고 떠났다. 정경원(35) 전문의는 모니터 바탕화면의 아내와 아이 사진을 보며 "저는 오히려 집이 멀어서 마음이 편하죠" 웃는다. 그는 작년 겨우 4차례 부산 집에 갈 수 있었다. 센터 관련 업무를 도맡아 하는 김지영(40) 코디네이터와 수술전담 간호사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몸만 힘든건 아니다. 중증외상환자는 병원 경영에 마이너스 요소가 되기 때문에 병원측과 편한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다. 응급환자에 대한 의료수가가 비현실적인데다 작년 한해 이국종 환자 200명으로 인한 15억 적자를 무시할 수도 없다. 이교수가 석해균 선장을 맡으면서 아주대병원에 1,300억원의 광고효과를 가져왔다지만 "천막을 쳐서라도 환자를 받겠다"는 입장을 병원측이 달가워할 수만은 없다. 그래서 이교수는 스스로를 '계륵(鷄肋)'이라고 말한다.

유희석 아주대병원장도 "중증외상 전문인력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전문의 수련기관에 대한 지원과 적정 수가 보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지 않고는 소위 메이저급 병원들도 기피하는 중증외상센터를 홀로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실제로 군의관 입대를 앞두고 이교수와 외상외과를 맡고 있는 권준식(30) 전문의도 국내 최고 대학병원에서 수련의로 있었던 5년간 중증외상환자 수술을 단 5회 밖에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외상은 우리나라에서 경제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40세 이하 국민들의 사망원인 1위다(2009통계청자료). 연간 3만명이 외상으로 숨지는데 이중 35%인 1만명 이상이 적절히 치료받지 못해 숨진 예방가능사망환자로 분류된다. 미국과 일본 영국 모두 10%미만이다.

지난 9일 보건복지부는 전국 6곳에 6,000억원 규모로 계획했던 권역 외상센터설립안이 경제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아 무산됐다고 밝혔다. 예견했던 결과다. 공공성이 강해서 나라가 나서야 할 일에 경제적 타당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이국종 교수는 매일 떠날 것을 고민한다고 했다. 이역만리에서 6발 총상 환자를 멋지게 구해낸 우리나라 의료계의 현실이다.

●중증외상

외상(外傷.traum)이란 추락, 교통 사고, 총상, 자해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해 입게 되는 부상이다. 이국종 교수는 석해균 선장의 총상이 중등도 상위 30%정도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더 심한 환자도 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외상은 우리나라 40세 이하 사망원인 1위다. 어린이 사망원인 1위인 안전사고, 20 30대 사망원인 1위인 자살도 외상외과로 이어진다. 국민 4명중 1명은 3대 응급질환(중증외상, 심혈관, 뇌혈관질환)으로 사망하고 있다.

원유헌기자 youhon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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