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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버거운 '그런 애들'… 사랑 위해 이민계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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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버거운 '그런 애들'… 사랑 위해 이민계획도

입력
2015.02.2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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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그런 애들은 없는 것 같네요.”

서울 A대학의 교양수업에서 교수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개선해야 한다고 한참을 강조한 뒤, 성소수자를 ‘그런 애들’로 표현했다. 강의를 듣던 윤진성(26ㆍ가명)씨는 강의 내용과 교수의 현실 인식이 이율배반적이라고 생각했다. 성소수자 인권을 공부한 교수도 '그런 애들' 같은 비하성 발언을 하는데, 하물며 일반 시민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동성애자인 윤씨가 앱으로 보니 강의실에는 게이 3명이 같이 수업을 듣고 있었다.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숫자상으로는 개선되고 있지만, 현실은 여전히 버겁다. 지난해 12월 한국갤럽이 조사한 ‘동성애에 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동성결혼 합법화에 찬성하는 비율은 33%에 다다랐다. 13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어났다. 하지만 동성애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 되는 순간 인식 개선 효과는 숫자놀음에 불과해 진다.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은 물론 혐오감마저 되살아나곤 한다.

개방적 문화의 대명사격인 대학생도 예외는 아니다. 20대는 3명 중 2명이 동성결혼 합법화에 찬성했지만, 취재 과정에서 만난 20대 중에서 "내 지인의 동성결혼에는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어렵잖게 만날 수 있었다.

여전히 대한민국 캠퍼스에서 동성애자로 산다는 것은 고달픔의 연속이다. 대학생 동성애자 7명(레즈비언 2명, 게이 5명)을 만나 연애와 결혼, 학교생활과 취업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들어봤다. 이번 편에서는 결혼과 연애를 다루고, 학교생활과 취업은 다음 편에 이어진다. 동성애자의 삶에 대한 앎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작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관련시리즈 보기

대학생 동성애자가 사는 법① 2015 대한민국 동성애학 개론

한 동성커플이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있는 뒷모습. LGBT 아제르바이잔 사이트 캡쳐(www.gay.az) /2015-02-16(한국일보)
한 동성커플이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있는 뒷모습. LGBT 아제르바이잔 사이트 캡쳐(www.gay.az) /2015-02-16(한국일보)

● 결혼 : 때론 진실보다 거짓이 나아,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면

“제 행복도 중요하지만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도 않아요. 그래서 위장결혼을 택했죠.”

김정태(25ㆍ가명)씨는 커뮤니티에서 만난 레즈비언 친구와 위장결혼을 준비 중이다. 김씨가 게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부모님은 남들처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길 바라실 터. 그래서 번듯하게 결혼한 뒤, 형식적인 배우자와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행복을 좇겠다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보통 결혼 때문에 겪는 가장 큰 고민인 경제적 문제는 김씨에겐 뒷전이다. 부모님 앞에서 금슬 좋은 부부인 척 연기해야 할 현실이 제일 걱정이다.

김씨가 선택한 길은 비단 부모님에 대한 배려일 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김씨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게 모두가 편안한 길”이라며 “훗날 동성애자 인권이 더 보장된다 하더라도 동성결혼보다는 시민결합제도가 더 현실적”이라고 덧붙였다. 시민결합제도는 배우자로서 권리와 법적 이익이 일부 혹은 온전히 보장되며 결혼보다 결합의 해소가 자유롭다. 현재 뉴질랜드 등 약 20여 나라에서 시행 중이다.

위장결혼도 말처럼 쉽지는 않다. 김씨처럼 뜻이 맞는 상대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여겨지는 것이 이민이다. 레즈비언 이수아(25ㆍ가명)씨는 현재 사귀고 있는 애인과 함께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네덜란드나 시민결합제도가 마련돼 있는 프랑스로의 이민을 계획 중이다. 이씨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이라며 “이민 자금을 마련하려고 적금을 붓고 있다”고 밝혔다.

종로 낙원상가에 위치한 한 카페앞에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 섹슈얼, 트랜스젠더)의 존엄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걸려있다. 이 카페는 게이들 사이에서 명소로 소문난 곳이다. /김진솔 인턴기자 (서강대 신문방송4) 2015-02-16(한국일보)
종로 낙원상가에 위치한 한 카페앞에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 섹슈얼, 트랜스젠더)의 존엄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걸려있다. 이 카페는 게이들 사이에서 명소로 소문난 곳이다. /김진솔 인턴기자 (서강대 신문방송4) 2015-02-16(한국일보)

● 연애 : 너나 나나 똑같아, 취향만 다를 뿐

연애를 해야 결혼도 한다. 그게 위장결혼이든 이민 결혼이든. 동성애자들이 애인을 만나는 다양한 방법 중 가장 일반적인 경우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씨 역시 마찬가지다. 이씨는 “동성애자들은 주로 앱을 통해 모임을 형성한다”며 직접 자신의 스마트폰에 설치된 앱들을 보여줬다. 실제로 앱스토어에 동성애 관련 검색어를 입력해보니 랜덤채팅 앱부터 위치기반서비스까지 수십 개의 앱이 등장했다.

앱을 통해 만난 이들은 주로 이태원이나 홍대에서 데이트를 즐긴다. 이태원 홍대 종로에서 무지개 깃발이 세워진 클럽을 발견했다면 그곳은 동성애자를 위한 장소다. 영화에서처럼 즉석 헌팅이 이뤄지는 곳이기도 하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소개팅을 하고, 술집에서 헌팅을 하는 건 이성애자와 다를 바 없었다.

연애관도 마찬가지다. 흔히 연예프로그램에서 동성애자들이 여기저기 집적대는 바람둥이로 묘사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은 ‘동성애자=바람둥이’라는 인식은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대표적인 편견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씨는 “동성친구에게 커밍아웃을 하니 자신을 좋아하는 줄 오해한 적이 있다”며 “동성애자가 모든 동성을 좋아할 것이라는 인식은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김진솔 인턴기자(서강대 신문방송학과4)

이유민 인턴기자(서울여대 언론홍보학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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