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지금 북한 주위엔 어떤 조력국도 없어… 중국도 분단 상태만 유지하려 애쓸 뿐

알림

지금 북한 주위엔 어떤 조력국도 없어… 중국도 분단 상태만 유지하려 애쓸 뿐

입력
2015.05.19 17:04
0 0

"김정은의 잔혹함만 떠올리기보다 무엇을 얻으려 그랬나 통찰해야"

방북 여섯 번 한 CIA 출신 한국통… 자서전 '역사의 파편들' 국내 출간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가 19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자서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근현대사에 깊숙히 간여했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가 19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자서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근현대사에 깊숙히 간여했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을 (대화 상대자가 될 수 없는)악마나 미친 사람으로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에요. 김정은은 향후 50년간 북한을 통치할 것이니만큼 한반도 안보를 위해 지금이라도 그와 대화에 나설 필요가 있습니다.”

도널드 그레그(88) 전 주한 미국대사는 19일 서울 힐튼호텔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천안함 사태나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숙청 등에서 우리는 김정은이 ‘무엇을 얻기 위해 그랬을까’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사건을 통찰하려 하지 않고 오로지 김정은의 잔혹함과 무자비함만을 떠올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자서전 ‘역사의 파편들’ 한국어판(창비 발행) 출간에 맞춰 방한한 그레그 전 대사는 “김정은은 북한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려는 자신의 통치방식에 반발하는 많은 군부 장성들을 다스려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며 “현영철 처형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군부 쿠데타 등 위험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인사들을 어떻게든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출신인 그레그 전 대사는 북한을 여섯 번이나 방문하는 등 한반도의 굴곡진 현대사에 깊숙이 개입해온 인물이다. CIA 한국 지부장으로 1973년부터 1975년까지 일하면서 박정희 정부의 김대중 납치사건과 전두환 정부의 김대중 사형집행을 막아냈고, 1992년에는 한미 연합훈련인 팀스피리트 훈련을 중단시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도 했다. 1989년부터 93년까지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그는 지난해 2월 방북해 북한에 억류돼 있던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의 석방을 촉구하는 등 서방과 북한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그레그 전 대사는 인터뷰 내내 대화가 중단된 현 남북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2002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로 방북한 이야기를 하면서 “박 대통령이 방북 하기 전 나와 만나 ‘우리가 희망을 갖고 미래를 봐야지 과거를 보면 안 된다’고 강조했는데 그 말에 큰 감동을 받았다”면서도 “하지만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대북정책에서 신뢰 프로세스를 가동한 것 빼고 현재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레그 전 대사는 박 대통령이 세월호 사태에 지나치게 많은 주의를 빼앗기면서 남북관계 등 다른 주요한 사안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백악관에서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관 등으로 10년 동안 일한 경험을 통해 한 가지 이슈가 모든 중요한 사안들을 뒷전으로 제칠 수 있다는 걸 잘 안다”면서 “임기가 2년 남았지만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태로 다른 정책을 추진하기 버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레그 전 대사는 ‘김정은의 잔혹한 통치가 대외적으로 알려지면서 사실상 국가수반 간 정상적인 대화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박정희정부 시절을 한번 돌이켜봐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최종길 서울대 법대교수를 고문해 죽음으로 몰고 가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납치했을 뿐만 아니라 비밀 핵개발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고 있다. 그건 남한이 올바른 길을 갈수 있도록 도와준 (미국 같은)조력국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지금 주위에 어떠한 조력국도 갖고 있지 않다. 중국은 막대한 자금 지원을 통해 남북 분단 상태를 유지하려고만 애쓰고 있다.”

그레그 전 대사는 천안함 사건과 남북관계 등에서 친북으로 여겨질 발언을 쏟아내 보수세력의 비난을 사기도 한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그는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는 우리 정부의 발표에 의문을 표시했다.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후 침몰의 원인을 한국 해군 장성들에 물었지만 누구도 정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북한 소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판단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임을 부정하는 과학적 증거들이 많다면서 “일례로 천안함 사건은 서해 백령도 인근에서 발생했는데 폭침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어뢰에 동해안에서 자라는 꼬막 종이 붙어 있다는 지적이 있다”며 “천안함 사건은 어뢰가 아닌 바다에 떠다니는 기뢰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레그 전 대사는 ‘종북’ 비난에 대해 “나는 스스로를 정원 파티에 온 스컹크라고 부른다”며 웃었다. “젊잖은 양복을 입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앞에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스컹크가 나타나면 사람들은 파티에서 허겁지겁 도망가기 마련”이라면서 “내가 사람들이 피해가려는 수많은 의문들을 던지고 논란을 일으키려고 노력하는 건 그게 사태를 직시하고 해결책을 얻는 올바른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