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진환 기자

등록 : 2017.07.18 14:56
수정 : 2017.07.18 15:01

“미스코리아는 한류 원조… 42년前 그날의 감동 못잊어”

1975년 재일동포 미코 노덕자씨

등록 : 2017.07.18 14:56
수정 : 2017.07.18 15:01

이듬해 미스태평양대회 2위 올라

당시 팬들에 편지 수천 통 받아

가수 데뷔 제안 부모 반대로 무산

“무대 화려ㆍ후보자 매너 세련”

61회 대회 참관해 소회 밝혀

“벌써 42년이 흘렀네요. 그동안 미스코리아라는 타이틀을 잊고 살았는데 돌이켜 보니 가슴이 뜁니다.”

제61회 미스코리아 본선대회가 열린 7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만난 노덕자(60) 씨는 40여년 전 그날의 감동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노씨는 1975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일본대표로 참가해 미로 뽑히고, 이듬해 호주 멜버른에서 개최된 미스태평양선발대회에서도 2위까지 올랐던 주인공이다. 미스코리아 역사상 재일동포 출신으로는 1971년 조애자씨에 이어 두번째로 본선에서 타이틀을 땄던 그는 한때 가수의 꿈을 키웠지만 결국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일본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관객으로 현장에서 관람해 본 건 처음”이라는 노씨는 “무대가 무척 화려하고 후보자들의 세련된 매너와 카리스마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회적인 관심이나 관객들의 열기가 예전보다 크게 줄어들어 아쉽다”고 했다.

노씨가 출전했던 1975년 대회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7,000여명이 좌석을 메웠고 KBS TV를 통해서 전국에 생중계됐다. 초대가수로는 인기절정이던 박경희, 윤항기, 김경남, 심사위원으로는 영화감독 신상옥씨가 나왔다.

당시 한국일보 기사에는 노씨와 관련된 짤막한 일화가 소개되기도 했다. 수영복 심사 때 사회자가 노씨에게 예뻐지는 비결을 묻자 “거울 앞에서 40분 동안 ‘나는 예쁘다’고 되뇌면 정말 예뻐진다”고 말해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왜 그렇게 말했는지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때까지 저는 한번도 제가 예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했어요.”

당시 도쿄한국학교 3학년(18세)이던 노씨는 미스코리아로 선발된 후 한국 팬들로부터 수천 통의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또 “NHK 방송으로부터 가수 데뷔 제안을 받고 준비를 했지만 부모님이 반대해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며 매우 아쉬워했다. 노씨의 부친은 도쿄에서 파친코 사업 등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노장수(일본명 노무라 도쿠기치〮 2012년 작고)씨이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시작된 1957년은 자신이 태어난 해”라며 미스코리아와의 인연을 강조한 노씨는 “미스코리아가 한류열풍을 일으킨 원조로서 앞으로 그 명성에 걸맞은 역할을 다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진환 선임기자 choi@hankookilbo.com

1976년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미스태평양선발대회에 참가한 노덕자(왼쪽)씨가 민속춤을 추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75년 미스코리아 미에 오른 지 42년 만에 본선대회를 참관하기 위해 방한한 노덕자 씨. 왕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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