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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하루키 작품선 스타워즈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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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하루키 작품선 스타워즈가 보인다

입력
2017.07.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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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하루키, 애니메이션 감독 하야오는 왜 세계적으로 통하는가?

독자들이 최근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독자들이 최근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야기론으로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미야자키 하야오

오쓰카 에이지 지음ㆍ선정우 옮김

북바이북 발행ㆍ312쪽ㆍ1만6,000원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로 다시 한번 서점을 장악한 무라카미 하루키. 이번 작품뿐 아니라 그의 소설 전반에 대한 대략적인 호평은 이렇다. “재미있다” “속도감 있게 읽힌다” “다음 내용을 궁금하게 만든다” 등등. 이에 대응되는 대략적인 악평은 이렇다. “뻔하다” “비슷한 얘기들의 반복이다” “여자 문제가 끼어들고 불필요한 성애 묘사가 많다” 등등. 이런 평은 이번 ‘기사단장 죽이기’에도 고스란히 반복된다.

‘이야기론으로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호평과 악평을 ‘문학의 스타워즈화’라는, 딱 한마디로 정리하는 간단명료함이 돋보이는 책이다.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는 SF초심자에게 잘 맞는, 단순 스페이스 오페라물이 아니다. 이 영화를 만들 당시 조지 루카스는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에 빠져 있었고, 캠벨은 러시아 민담을 수집ㆍ분석한 블라디미르 프로프와 칼 융의 영향을 받았다.

실제 1977년 이후 3년 간격으로 개봉된 ‘스타워즈 에피소드4 : 새로운 희망’ ‘스타워즈 에피소드5 : 제국의 역습’ ‘스타워즈 에피소드 6 : 제다이의 귀환’에는 캠벨의 흔적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캠벨은 전세계에 다양한 신화가 있지만, 뜯어보면 ‘모험의 부름 – 부름에 대한 거부 – 초자연적 존재의 도움’ 등으로 이어지는 17단계의 이야기 구조를 공유하고 있다 봤다. 17단계의 이야기 구조를 ‘신화의 원형질’이라 부른다. 루크 스카이워커 스토리는 정확히 이 신화구조를 따르고 있다.

저자는 하루키가 “캠벨ㆍ루카스 방식의 이야기론”을 전면적으로 흡수했다고 본다. 캐릭터, 문체, 재즈, 피아노 어쩌고 해봐야 그런 것들은 부차적 문제다. 저자는 아예 ‘하루키 문학’에서 ‘하루키’란 곧 ‘이야기 메이커’요, ‘문학’이란 곧 ‘데이터베이스형 소비’일 뿐이라 말한다. 어떤 상황, 어떤 인물이 주어져도 하루키는 ‘캠벨ㆍ루카스의 신화구조’를 작동시키는 스마트폰 앱 같은 존재다. 이렇게 보면 하루키 작품을 두고 ‘겉멋든 대학생들이나 좋아하는 허세 소설’이라 혹평하는 것이나 ‘모던한 느낌의 훌륭한 소설’이라 극찬하는 것이나, 사실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신화학자 캠벨에 푹 빠져

루카스가 스타워즈 만들었 듯

하루키도 그 신화구조를 차용

스타워즈 시리즈를 낳은 조지 루카스. 그는 조지프 캠벨의 신화 연구에 영감을 얻어 스타워즈 세계관을 창조해냈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낳은 조지 루카스. 그는 조지프 캠벨의 신화 연구에 영감을 얻어 스타워즈 세계관을 창조해냈다.

사실 하루키 작품이 동일 서사구조의 반복과 변조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해왔다. 일본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만 해도 하루키 작품을 평하면서 “구조 밖에 없다”고 단언한 바 있다. ‘간단명료’가 강점인 이 저자의 차별성이라면 “하루키가 피츠제럴드나 샐린저처럼 쓰고 있다”라고 뭔가 있어 보이게 말하지 않고 “스타워즈처럼 쓰고 있다”고 딱 꼬집어 얘기한다는 부분이다. 아예 “하루키를 읽고 논하는 독자 및 비평가로서 자신의 존엄을 읽지 않는 아이템만을 선택해 하루키상을 구성하는 경향이 있다”고까지 해뒀다.

스타워즈와 하루키 소설은 똑 같은 구조를 공유하지만, 스타워즈를 본 뒤엔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반면, 하루키를 읽고 나면 뭔가 세련된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을 느낀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저자는 ‘스타워즈화’라는 분석틀을 가지고 하루키의 소설 ‘잃어버린 소녀’ ‘태엽 감는 새’ ‘스푸트니크의 연인’ ‘양을 쫓는 모험’ ‘해변의 카프카’ 등에서 루크 스카이워커와 요다와 다스 베이더를 찾아낸다.

대중문화시대, 스타들로 가득 찬 TV를 일러 ‘그리스 판테온(만신전)의 재림’이라 부르는 기호학, 신화학에 비춰 보면 크게 새로울 것 없는, 재미난 읽을 거리인데, 저자는 슬쩍 한발 더 내지른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핵심은 '성장하지 않음'이다. 북바이북 제공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핵심은 '성장하지 않음'이다. 북바이북 제공

바로 하루키가 신화 구조를 차용하면서도 주인공의 ‘신화적 성장’만큼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루키 작품 속 소년은 그냥 소년에 머물거나 성장 서사는 얼버무린다. 하루키 소설에 ‘청춘’이란 수식어가 자주 붙은 이유다. 이것 자체가 무조건 나쁘다 말하긴 어렵다. 다만 문제는, 대체 언제까지 계속 그렇게 안 크고 있을 거냐다. 이 비판은 하루키의 무책임함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기사단장 죽이기’ 출간 이후 “전작 ‘1Q84’에서 옴진리교 문제를 다루더니 이번엔 난징대학살 문제를 다뤘다”는 말, 그리고 “이제 역사적, 사회적 눈을 떴다”는 평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하루키는 이런 역사, 사회적 사건도 주인공이 겪은 비극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신화적 장치로 소비해버리고 만다. 가해와 피해의 관계 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알고 보면 사실은 나 또한 비극적 피해자’라는 징징거림을 위한 장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얘기다. 하루키식 청춘이란, 알고 보면 무책임하고 미성숙한 자의 끊임없는 변명이다.

이런 저자의 입장은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평가에서도 일관된다.여성 역할을 부각시키는 그의 작품은 흔히 페미니즘적이란 좋은 평을 받는다. 하지만 저자는 여성의 희생에 의존한 것일 뿐이라 본다. 사실 모든 문제는 주체의 문제다. 하루키 인기는, 홀로 서기가 힘든 시대의 알리바이이기도 하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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