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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에 취했나… 막나가는 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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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에 취했나… 막나가는 래퍼

입력
2015.07.27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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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저항 힙합정신으로 포장

대마초 수감 중에 앨범 내고 여성 혐오·폭력적 가사 쏟아내

'쇼미더머니'등 이슈몰이에 올인, 디스 조장하고 여과없이 방송

‘아무데나 앉아 담배 한대 펴/ 몸에 해로워 나도 알지 물론/ 중독인데 아닌 척/ 사실은 그냥 멍 때릴 시간 좀 버는 거지.’

래퍼 이센스가 낸 신곡 ‘비행’이다. 이센스의 소속사는 24일 신곡을 발표하며 “많은 사람이 기다렸던 이센스의 첫 번째 정규앨범을 머지않아 모두가 들을 수 있을 것”이라며 새 앨범 발매 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발표 시점이 심상치않다. 불과 이틀 전인 22일 그는 대마초 흡연(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다. 2012년에 이어 같은 혐의로 두 번째 구속돼 실형을 선고 받고도 아랑곳없이 음악활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강태규 음악평론가는 “수감 중인 음악인이 앨범을 낸 사례는 국내에 단 한 번도 없었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형 가요기획사의 한 관계자도 “공익을 위해 싸우다 구속돼 사회 비판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래를 발표하는 것도 아니고, 도덕적으로 이해도 안 되고 한국 정서상 맞지도 않는 일”이라며 당황스러워했다.

힙합신의 막무가내식 행태가 도를 넘고 있다. 일부 몰지각한 래퍼와 제작자들이 자유와 저항이라는 ‘힙합정신’으로 포장한 채 폭력적인 가사와 행위를 거침 없이 쏟아내 물의를 빚고 있다. 래퍼 블랙넛은 지난달 발표한 ‘하이어 댄 이-센스’란 곡에서‘Tiger** 마누라껀 딱히’ 등 성희롱에 해당할 만한 가사를 뱉어냈다. 그룹 위너 멤버인 송민호도 최근 방송된 Mnet ‘쇼미더머니4’에서 “미노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여성비하 랩을 해 공분을 샀다.

힙합계에서도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언어유희를 특징으로 하는 래퍼들의 ‘펀치라인’이 유행으로 번지고 있는데, 저항과 풍자가 아닌 약자에 대한 공격과 비방이라는 점이 문제다. 강간을 연상케 하는 가사마저 표현의 자유를 들이대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는 일이라는 비판이 많다. 11년 차 래퍼인 A씨는 “힙합이 저항 외에 파티 음악의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가사에 일부 비속어가 쓰이는 것은 쾌락의 측면에서 인정하지만 이도 예술적 문맥 안에서 가능한 일”이라며 “요즘엔 패륜, 극도의 여성혐오 등을 재치로 보고 막 가져다 쓰는 일이 늘었는데 분명히 비판 받을 점”이라고 꼬집었다. 에미넴 등 미국 유명 래퍼들이 여성비하 노래를 발표한 것을 두고 ‘이런 게 원래 힙합 문화’라는 주장을 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힙합 전문 웹진 리드머 편집장인 강일권씨는 “정작 미국에서도 스눕 독 등이 과거 여성비하 가사에 대해 사과하고 있는 판국에 ‘산부인과 랩’은 시대착오적인 행태”라고 비판했다.

최근 이 같은 논란은 거리의 장르가 안방으로 들어오면서 불거졌다. ‘쇼미더머니’ 등 힙합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자 방송 제작진들은 시청률 제고와 이슈몰이를 위해 디스를 조장하고 거친 랩을 여과 없이 내보낸 탓이다. 강씨는 “‘쇼미더머니’가 힙합의 대중화의 발판이 된 게 아니라 되레 욕하고 비방하며 여성을 비하하는 음악이란 왜곡된 인식을 줬다”며 “표현의 자유가 강한 미국에서도 라디오 방송에는 욕이 없는 클린 버전을 내보내는데 ‘산부인과 랩’ 등을 거르지 않고 방송에 내보낸 자체가 경악스러울 뿐”이라고 한탄했다. 래퍼이자 한양대 콘서바토리 교수인 디지는 “‘쇼미더머니4’는 19세 미만 청소년들이 더 많이 보고 자유롭게 다운 받을 수 있는 방송이란 매체적 특성을 고려해 더 신중하게 문제가 될 만한 래퍼들의 랩과 행위를 제작진이 걸렀어야 한다”며 “시청률에 급급해 지나치게 힙합의 폭력성만 부각해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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