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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워싱턴의 삼성과 현대ㆍ기아차

입력
2014.10.1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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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고위공무원이 개성공단 사업이 시작했을 무렵 들려준 얘기다. 지금은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사업 초기 한국 기업주의 가장 큰 고민은 북한 측의 잦은 인력교체였다. 개성공단 입주 업종은 대부분 섬유, 가발, 조립 등 노동집약적이다. 이들 업종의 성패는 근로자 숙련에 달렸는데, 당시 북한은 일이 손에 익을 때쯤이면 6개월~1년 단위로 인력을 바꿨다. 우리 측이 “왜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일을 하느냐”고 항의한 건 당연했다.

북한측 대답이 걸작이었다. “남쪽의 ‘합리’와 우리 ‘합리’는 다르다. 우리의 ‘합리’는 이 좋은 일자리 혜택을 되도록 많은 인민이 골고루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말을 듣는 순간에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으나, 곧바로 남북 격차가 벌어진 이유도 확실히 알게 됐다. 똑같은 문제에 대해 남한은 경쟁과 효율을, 북한은 축소지향적 내부 형평을 선택하면서 운명이 바뀐 것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각각 나름대로 합리적 선택을 했으나, 완전히 다른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이 곳 워싱턴에서도 서울과 비교하면 ‘같은 문제→다른 처방→엇갈린 운명’을 경험하게 된다. 공공요금, 교육, 안보정책 등에서 두 나라가 같은 문제에 다른 원칙으로 접근하는 걸 보게 된다.

먼저 공공요금. 워싱턴에서 처음 지하철을 타고 깜짝 놀랐다. 지하철 편도 요금이 2~6달러(2,500~7,000원)에 달하는 것도 당황스러웠지만, 출ㆍ퇴근 시간대 요금이 한가한 낮 시간보다 두 배 가량 비싸다. 요금을 원가보다 낮추고 적자를 세금으로 메우는 게 한국식이라면, 대중 교통을 타는 사람이 직접 책임을 지는 게 미국 방식이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공립인데도, 3학년부터 우열반(優劣班)으로 나눠 교육시킨다. 집에서 과외경쟁 벌이면서도 공교육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한국과 달리, 애초부터 차이와 다름을 알고 수준별로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워싱턴에 만난 삼성과 현대ㆍ기아차에서도 ‘같은 문제’에 대한 ‘다른 접근’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글로벌 기업은 올해 초 비슷한 시기에 미국 연방정부가 있는 워싱턴에 사무소를 열었다. 전자부문 세계 1위와 자동차 세계 5위 기업으로 성장하다 보니, 글로벌 규제의 틀을 설정하는 미국 연방정부 움직임에 신속 대응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사무소를 연 것까지는 같지만, 두 회사가 처한 상황은 다르다. 현대ㆍ기아차는 ‘미국 기업’으로 대접 받는다. 앨라배마와 조지아에 연간 70만대 생산설비를 갖추고, 수 만 개 일자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 의회조사국이 ‘미국에 거점을 둔 수출기업’이라고 지칭할 정도다. 현대ㆍ기아차도 미국에 파견 온 일부 한국 공무원에게 20~30% 할인해주는 것 말고는 ‘한국계’라고 특별히 더 해주는 건 없다.

이런 사정을 알기 때문일까.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일자리에 대한 기획 기사(4일자)에 특유의 ‘로고’가 선명한 기아차 구인 사진을 실었다. 반면 삼성은 그 신문에 공격 당했다. 10일자 국제면에 게재된 후계구도에 관한 기사인데, 경영권 승계과정을 설명하면서 미국인이 가장 혐오하는 나라인 북한의 ‘3대 세습’과 비교했다. 압도적 제품력 때문에 미국 시장을 장악하고는 있지만, 삼성은 미국의 자랑인 ‘애플’과 경쟁하는 외국기업이라는 미국인의 보편적 정서를 드러낸 대목이다.

두 기업 모두 ‘한국 경제를 위한다’며 10조원 넘는 돈을 풀기로 했는데, 방식이 사뭇 다른 모양이다.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은 예정 가격의 세 배가 넘는 돈을 주고 한전부지를 사들이면서, “국가에 내는 돈이어서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삼성은 15조원을 들여 경기 평택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했는데, 14만개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한다.

정부 토지를 비싸게 매입해 국고(國庫)를 채운 것과 10만개 넘는 일자리를 만들기로 한 것 가운데 어떤 것이 한국경제에 더 도움을 줄지 지켜볼 일이다.

조철환 워싱턴특파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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