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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중문화도 용납하지 못하면서 문화융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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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중문화도 용납하지 못하면서 문화융성인가

입력
2016.11.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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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동 청와대 전 경제수석이 이미경 CJ 부회장에게 퇴진을 압박한 게 CJ가 제작 또는 배급한 영화와 방송프로그램 내용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청와대 수석이 민간기업 경영진을 겁박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뜻’만 내세울 뿐 구체적 이유를 대지 못했으니 이런 분석이 설득력을 갖고 확산돼도 이상할 게 없다. 실제 이유가 그렇다면 문화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태도가 시대착오적이고 유치하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정당한 근거 없이 민간기업의 경영활동을 제약했으면 상응한 벌을 피할 수 없다. 이 부회장의 거취와 관련해 언급되는 CJ 영화로는 ‘광해, 왕이 된 남자’와 ‘변호인’이 있다. 2012년 개봉된 ‘광해’는 서민적 풍모의 주인공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린 데다 당시 대선에 출마한 문재인 후보가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이듬해 상영된 ‘변호인’은 누가 봐도 노 전 대통령의 삶을 그린 영화로 평가된다. CJ 계열사인 tvN의 ‘SNL코리아’는 전ㆍ현직 대통령과 대선 후보들을 패러디하고 개그 소재로 사용했다.

이 때문에 CJ가 미운털이 박혔다는 소문이 일찌감치 나돌았다. 이번에 조 전 수석의 퇴진 압박이 확인되면서 소문이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이 부회장은 자신이 좌파로 몰리자 괴로워하며 미국으로 건너가 2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다. CJ 그룹의 경영이 얼마나 올바르고 공정한지와는 별개로,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경영에서 물러난 이 부회장의 비애를 이해할 만하다. CJ뿐 아니라 ‘변호인’을 투자 배급한 뉴(NEW) 또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았다고 하니 이것이 박근혜정부가 틈만 나면 부르짖던 문화융성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비판ㆍ풍자ㆍ이견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 옹졸함과, 심기를 불편하게 한 대상은 기필코 보복하는 저열함이 놀랍다. 두 영화 모두 1,000만명 이상 관람한 역대 10위권의 흥행작인데도 보기 불편하다는 주관적 이유를 들어 ‘좌파영화’로 규정하는 것도 어설프지만, 설령 좌파라 해도 헌법이 보장하는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며 보복하는 것은 정당한 국가행위가 아니다.

이제 청와대는 더 이상 나 몰라라 입다물고 있을 게 아니라 이 부회장이 물러난 경위에 대해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어떤 이유로 퇴진하라고 한 것인지, 그 과정에 실제 대통령의 뜻이 작용했는지 등을 자세히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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