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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되지 않은 시대의 상처 '시그널'로 위로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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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되지 않은 시대의 상처 '시그널'로 위로하고 싶어"

입력
2016.03.1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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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족 위로” 시청자 호응에 “감사”

SBS편성 무산에 배우 섭외 난항 속앓이도

김은숙 작가와 절친 “서로 드라마에 이름 사용”

김은희 작가는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무전기란 판타지적 요소를 통해서라도 미제 사건 유족들에 진실을 알려주고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정현 인턴기자
김은희 작가는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무전기란 판타지적 요소를 통해서라도 미제 사건 유족들에 진실을 알려주고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정현 인턴기자

“죄송해요, 급한 전화라서요.” 지난 9일 오후 5시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인근 한 아파트.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42) 인터뷰 도중 김원석 PD가 김 작가에 전화를 걸어왔다. 극중 이재한 형사(조진웅)와 박해영(이제훈)이 무전을 나누는 시간과 관련한 장면을 어떻게 방송에 내보낼지 의견을 묻는 내용이었다. 무전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시간은 오후 11시23분. 두 사람의 무전은 꼭 이 시간에만 이뤄져 시청자들이 숨은그림찾기 하듯 작품 속에서 단서를 찾으며 온갖 추측을 인터넷에 쏟아 내고 있다. 12일 종방을 앞두고 만난 김 작가는 “무전 시간에 얽힌 비밀은 11일 방송된다”며 웃었다. 살해당했던 이재한 형사는 살아날 수 있을까? 김 PD의 전화가 걸려 온 참에 대놓고 결말을 물었더니 비보도를 전제로 살짝 비밀을 들려줬다.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결말인지는 모르겠네요.” 김 작가는 시청자의 반응을 매우 걱정하는 눈치였다.

11일 방송될 tvN '시그널' 15회 대본. 지난 1월 대본 집필을 끝냈다는 김 작가는 "(최종회인)16회 대본은 스포일러 유출 방지를 위해 대본집을 따로 만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정현 인턴기자
11일 방송될 tvN '시그널' 15회 대본. 지난 1월 대본 집필을 끝냈다는 김 작가는 "(최종회인)16회 대본은 스포일러 유출 방지를 위해 대본집을 따로 만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정현 인턴기자

김 작가가 쓴 ‘시그널’은 케이블채널에선 이례적으로 10%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지난 2014년 방송돼 최고 시청률 8.2%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은 tvN 드라마 ‘미생’보다 반응이 더 뜨겁다. ‘시그널’은 경찰 내 장기미제(未濟)사건전담팀이 미제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을 그린 수사물이다. 미제 사건을 다룬다는 건 경찰의 치부를 들추는 일이다. ‘시그널’은 이 공권력의 허점을 파고 들어 진범을 잡아내 통쾌함을 줬다. 무겁고 어두운 수사물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극 속에 현실이 담겨서다. 1970년대 대도(大盜)로 불린 조세형 사건을 모티프로 대도 사건을 펼치고, 사건의 진범을 권력자의 아들로 꾸려 부패한 공권력을 꼬집으며 몰입도를 높이는 식이다. ‘시그널’은 1987년 벌어진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 등 시대의 아픔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죽은 이재한 형사의 유골을 15년 만에 찾은 이 형사의 아버지가 “죽기 전에 제삿밥은 지어 먹일 수 있겠다”며 우는 장면이 방송됐을 때는, 시청자들이 “세월호 참사 유족 생각이 나서 같이 울었다”며 공감을 표했다.

김 작가가 민감할 수 있는 실제 미제 사건을 극으로 끌어들인 건 “치유되지 않은 시대의 슬픔을 위로하고 싶은 바람”에서 시작됐다.

“삼풍백화점 붕괴나 대구 지하철 참사 등 시대를 관통하는 아픔을 우린 많이 지녔잖아요. 그런데 과연 그 상처들이 제대로 치유됐을까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다면 그게 미제 사건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시청자 분들이 세월호(참사)도 미제 사건으로 보고, 그 슬픔과 위로를 드라마에서 찾는 게 아닐까 싶어요.”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에서 미제사건을 쫓는 형사들을 연기한 배우 이제훈(왼쪽부터)과 김혜수, 조진웅. 김은희 작가는 "이제훈이 맡은 박혜영은 부패한 공권력으로 형을 잃은 분노에 찬 워낙 복잡한 캐릭터라 연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방송 초반 연기력 논란을 겪어)작가로서 오히려 미안했다"고 말했다. tvN 제공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에서 미제사건을 쫓는 형사들을 연기한 배우 이제훈(왼쪽부터)과 김혜수, 조진웅. 김은희 작가는 "이제훈이 맡은 박혜영은 부패한 공권력으로 형을 잃은 분노에 찬 워낙 복잡한 캐릭터라 연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방송 초반 연기력 논란을 겪어)작가로서 오히려 미안했다"고 말했다. tvN 제공

김 작가는 ‘시그널’을 2014년부터 2년 동안 준비했다. 고충도 많았다. SBS 등과 논의 중이던 지상파 편성이 무산돼 속앓이도 했다. 배우 섭외도 난항이었다. “조진웅도 (과거와 현재가 서로 교신한다는)무전기 설정이 말이 되냐며 출연을 처음에는 고사”했고, 여배우들은 “분량이 적다”며 출연에 난색을 표했다. 김 작가를 구원해 준 이가 고등학교 1년 선배인 배우 김혜수다. 김 작가는 “영화 ‘도둑들’ 등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준 김혜수가 여형사 역으로 제격이라 생각해 출연을 요청했다”며 “대본을 보고 난 뒤 재미있다며 분량 같은 건 따지지도 않고 출연해 줘 정말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런 김혜수를 김 작가는 6회에서 죽음으로 몰고 가 시청자를 당황시켰다. 김 작가는 “판타지적 장치인 무전기를 통해 희망만 보여줄 수 없었다”며 “그 희망을 얻기 위해선 대가가 따른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우리 삶이지 않나”라며 웃었다. 김 작가는 시청자들의 빗발치는 ‘시그널’ 시즌2 제작요구에 대해선 “제작진도 바라는 일”이라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예능 작가 출신인 만큼 장난기도 많다. 김 작가는 전작인 ‘유령’(2012)에서 피해자의 부인 이름으로 KBS2 ‘태양의 후예’를 쓴 김은숙 작가의 실명을 썼다. 김 작가는 “(김)은숙이랑은 나이도 같고 말도 통해 정말 친하다”며 웃었다. 김은숙 작가도 ‘유령’과 같은 해 전파를 탄 ‘신사의 품격’에서 장동건의 첫 사랑 이름으로 김은희 작가의 실명을 썼다. 김 작가의 ‘시그널’과 ‘유령’에는 범죄가 일어나는 지역으로 가상의 도시 ‘인주시’가 쓰였는데, 이는 김은숙 작가의 ‘시티홀’(2009)에도 나오는 지명이다. 김 작가는 “수사물을 하다 보니 실명이나 실제 지역이름을 쓸 수 없어 고민이 많던 차에 은숙이게 말하고 그 지명을 가져다 쓴 것”이라며 “내 작품 속에선 영화 ‘배트맨’ 속 고담 시티 정로도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4월 김은숙 작가와 함께 여행을 간다고도 했다. 김 작가는 “특정 사건이 터질 때 은숙이는 사랑을 찾는 반면, 난 그 안에서 누군가 죽으면 재미 있겠네란 생각을 한다”는 농담도 했다.

장항준(왼쪽) 감독과 김은희 작가 부부. 김 작가는 "남편의 미발표 시나리오를 컴퓨터로 옮겨 적으며 이야기를 쓰는 데 흥미를 느껴 작가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항준(왼쪽) 감독과 김은희 작가 부부. 김 작가는 "남편의 미발표 시나리오를 컴퓨터로 옮겨 적으며 이야기를 쓰는 데 흥미를 느껴 작가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남편인 장항준 감독(‘라이터를 켜라’)의 지원으로 방송 작가 일을 시작했다. “대학생 때 날라리나 다름 없었던” 김 작가에게 “사회적으로 눈을 틔우는 데 도움을 준 게 남편”이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김 작가는 장 감독과 공동집필로 ‘위기일발 풍년빌라’(2010)를 써 드라마 작가로 데뷔했으며, ‘싸인’(2011)의 대본도 남편과 함께 썼다. 하지만 김 작가는 “앞으론 절대 남편과 공동 집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웃었다. “장 감독이 작가는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못하겠다”고 두 손을 들어서다. 이젠 김 작가가 남편 보다 유명 인사가 됐다.

“남편이 ‘시그널’ 관련 기사에 달린 ‘장항준 감독님 행복하시겠어요’란 댓글을 보여주더라고요. 그 말을 남편도 인정해요. 지금 남편이 제 이름으로 된 신용카드를 쓰고 있거든요, 하하하.”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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