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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나를 위해 기도하지 마세요

입력
2018.05.29 19:0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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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제발, 나를 위해 기도하지 마세요.”

4월부터 SNS를 뜨겁게 달구는 온라인 미디어, 닷 페이스의 영상 속 이야기다. 성 소수자 청년들에 대해 부모가 가했던 정신적 물리적 압박, 그리고 강제적 전환치료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다. 총 3부작 중 1부에 해당하는 이 영상은 9만7,000회의 조회 수, 1,335회의 공유 수를 기록하며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나 역시 성 소수자 청년을 자주 접촉하고 상담해온 만큼, 꼭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지만 1분이 채 되지 않아 멈추어 버렸다. 상담소를 거쳐 갔던 어느 레즈비언 청년이, 부모가 강제로 보낸 기도원에서 끝내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에 혼자서 하염없이 울었던 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 누가 그녀를 생의 끝자락으로 몰고 갔을까. 병아리 상담가였던 그 시절에는 그저 ‘부모님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라는 안타까움에 사로잡힐 뿐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들 청년의 부모 상담도 조금씩 진행하게 되었는데,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 주로 ‘공포감’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이 공포감이 대체로 과장됐거나, 실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었다.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경우다.

첫째, 성 소수자의 개념이 혼재된 경우다. 즉 게이라고 커밍아웃한 아들을 둔 어머니의 경우, “내 아들이 어느 날 딸이 될까 봐 두려워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둘째, 살면서 접해본 성 소수자는 매체를 통한 몇몇 방송인뿐이어서 발생하는 공포, 즉 모든 성 소수자는 언젠가 ‘까발려지고’ 입방아에 오르내린다고 생각한다. 셋째, 성 소수자의 사회 진출과 소속에 대한 분포를 몰라서 발생하는 착각, 대체로 사회에서 매장당하고 천한 일(이것은 부모 당사자의 표현을 빌렸다.) 외에는 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한다. 넷째, 성적 지향성을 성적 문란 및 타락, 당위적 에이즈 보균자 등과 혼동해 공포를 느낀다.

이 공포감과 ‘구해야만 한다’는 다급함이 폭력, 동반 자살 시도, 강제 전환치료 등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양상 속에서, 부모세대를 가해자로 지목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이 세대가 살아온 시대에서 다양성을 존중하기란, 아니 다양성을 논하기 전에 중년까지의 삶에서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라는 단어 자체를 접해보지 못했던 이들에게 조건 없는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또 다른 강압 아닐까?

당사자가 받아들이는 시간 이상으로 부모에게도 시간은 필요했다. 상담을 끝내고 문을 나서던 한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을 통해 내 감정이 무지에 의한 두려움이라고 받아들이긴 하나, 여전히 화염 같은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다만 그 불길에 놀라, 건너편에 서 있는 내 새끼를 잠시 잊고 있었다고. 지금부터 조금씩 불길을 헤치고 걸어가 언젠가는 내 아이를 다시 안아주어야겠다고. 단지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어떤 세대보다 ‘보편의 가치’ 속에 있는 것이 안전하다 믿는 세대. ‘내 자식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주는 극도의 공포감. 이들이 마주하는 공포의 불길은 성적 지향성이 치료의 대상도, 정신병도 아닌 구성원의 한 형태일 뿐이라고 사회 전체가 인식하는 세상에서야 비로소 잦아들지 않을까. 그래서 부탁하고 싶다. 조금씩 물 위로 떠오르는 이 공론화의 테이블에, 당신도 함께 주었으면 한다. 소수자가, 소수자 가족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당신은 반문할지 모른다. 왜 관계없는 나까지 끼어야 하냐고. 아무 관심도 없고, 내 인생에선 볼일도 없다고. 하지만 말하고 싶다. 우리 모두의 곁에 단지 말하지 않았을 뿐인 그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앞으로도 우리는 함께 숨 쉬며 가야 한다는 것을.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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