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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도 그만뒀지만, 후회는 없는 1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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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도 그만뒀지만, 후회는 없는 100일

입력
2014.07.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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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휴가 눈 깜짝할 새 지나가 직장 복귀했지만 학생들 어른거려

이틀 만에 사직서 내고 봉사 전념

광주의 부모님 미혼인 아들 걱정 최근 직업소개소 등에 구직 신청

"직장보다 소중한 경험 얻었어요"

심보길 물품팀장이 23일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가 차려진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점심 반찬으로 쓰일 계란국을 끓이고 있다.
심보길 물품팀장이 23일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가 차려진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점심 반찬으로 쓰일 계란국을 끓이고 있다.

세월호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둔 23일 오전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가 차려진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 추적거리며 내리는 빗속을 뚫고 구호물품이 실린 트럭이 도착하자 자원봉사자 심보길(44)씨가 뛰어나가 물품들을 창고로 나르기 시작했다. 심씨는 사고가 터지자 직장까지 그만두고 자원봉사일에 전념하고 있는 대한적십자사 안산지구협의회 물품팀장이다. 덥고 습한 날씨 탓에 심씨의 온 몸은 금세 땀투성이가 됐다. 오전 10시쯤 이번에는 급식팀에서 희생자 가족과 자원봉사자들의 점심 반찬으로 쓰일 갈치 100여 마리를 나르고 다듬을 사람이 필요하다는 호출이 왔다.

심씨는 안산 지역의 한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직원이었다. 그러다 4월 16일 사고 소식을 접한 후 회사에 일주일 휴가를 내고 단원고로 달려갔다. 일손은 턱없이 부족했다. 각종 식료품과 침구류 등 무겁고 부피가 큰 것부터 치약ㆍ칫솔 같은 작은 생필품에 이르기까지 전국에서 답지하는 구호물품은 종류만 1만5,000종에 달했다. 초대형 몽골 텐트 6, 7개에 물품들이 꽉 들어 찰 정도였다. 엄청난 물량의 후원물품을 하나하나 분류하고 정리한 뒤 필요할 때마다 다시 내 주는 게 심씨의 일이다. 하루 3시간 이상 잠 자기 어려워 상황실이나 임시 물류창고에 아예 야전침대를 갖다 놨다. “가정이 있는 봉사자들은 집에서 출퇴근 하기 때문에 24시간 현장을 지킬 전담 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자원했습니다.” 심씨는 미혼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100일 동안 합동분향소와 진도체육관, 팽목항 등에서 활동한 대한적십자사 소속 자원봉사자는 2만 명에 달한다.

휴가는 금세 지나갔다. 다시 직장에 돌아갔지만 희생된 학생들의 얼굴이 아른거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결국 복귀 이틀 만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다시 합동분향소로 향했다.

실종자 수습기간이 길어지면서 봉사자들도, 후원물품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급식차량 일에다 음식 봉사까지 겸하고 있다. 난생 처음 해 보는 주방 일이라 팔뚝 여기저기에 데인 상처들이 많다.

가장 가슴이 미어졌던 건 발인하던 날 단원고 희생자들을 실은 운구차가 학교 운동장을 돌던 모습이라고 한다. 그날 이후 분향소 안에는 되도록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웃고 있는 아이들의 영정 사진을 보노라면 눈물이 솟구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씨는 광주에서 아들을 걱정하는 부모님도 챙겨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한다. 얼마 전 직업소개소 등에 구직 신청을 해 놓은 상태다. 제조업 분야가 불황이라 재취업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희생자 및 실종자 가족들이 무거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고 분양소를 떠날 때까지 이 자리를 지키고 싶다고 했다. “후회하진 않습니다. 대신 돈이나 직장보다 더 소중한 경험을 얻었습니다.”

글ㆍ사진=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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