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여왕’ 김연아(28ㆍ은퇴)가 없는 올림픽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피겨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걸고, 2014 소치 대회에서도 흠 잡을 데 없는 연기로 은메달을 획득한 뒤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동계스포츠 사상 최고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힐 정도로 독보적이라 한국 피겨는 ‘포스트 김연아’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4년 후 김연아를 보고 자란 ‘연아 키즈’들이 점점 그 자리를 메워가고 있다. 한국 피겨는 9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막을 올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사상 최초로 전 종목 출전권을 확보했다. 2002 솔트레이크 올림픽 당시 남ㆍ녀 싱글, 아이스댄스 세 종목 출전 이후 2006 토리노 올림픽 0명, 2010 밴쿠버 올림픽 여자 싱글 2명(김연아ㆍ곽민정), 2014 소치 올림픽 여자 싱글 3명(김연아ㆍ박소연ㆍ김해진)을 내보냈는데 안방에서 열리는 올림픽엔 남ㆍ녀 싱글, 아이스댄스, 페어까지 모두 출전권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뤘다.
평창올림픽 피겨의 시작을 알린 이날 팀이벤트(단체전) 쇼트프로그램에선 ‘남자 김연아’로 불리는 차준환(17)이 김연아 은퇴 후 첫 올림픽에서, 첫 주자로 은반을 누볐다. 단체전은 남자 싱글, 여자 싱글, 아이스댄스, 페어 네 종목의 점수를 합쳐 메달 색을 가린다.
남자 싱글 출전 선수 10명 중 세계 랭킹(56위)이 가장 낮아 먼저 연기에 나선 차준환은 안정된 클린 연기로 기술점수(TES) 40.71점에 예술점수 36.99점을 합쳐 77.70점을 따내 6위에 올랐다. 지난해 11월 치러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그랑프리 2차 대회에서 작성한 68.46점을 뛰어넘는, 이번 시즌 ISU 공인 쇼트프로그램 개인 최고점을 작성했다.
차준환은 감기 몸살로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닌 상황에서도 한국 대표팀의 첫 단추를 잘 끼웠다. 연기를 마친 그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연습할 때는 더 잘했는데, 아직 완벽하게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았다”고 아쉬워하면서도 “첫 올림픽, 첫 주자,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라는 세 가지가 모두 멋진 일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차준환과 국내 대표 선발전에서 마지막까지 경쟁했던 이준형(22) 한국일보 해설위원은 “첫 올림픽이라 부담도 되고 감기 몸살까지 앓고 있는 상태에서 깔끔하게 연기를 잘 마쳐 기특하다”며 “스피드는 떨어져 보이지 않았지만 트리플 악셀 때 살짝 착지가 불안했고, 콤비네이션 점프나 러츠 역시 평소보다 좋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한국 피겨 대표팀은 차준환의 6위(팀포인트 5점)에 이어 페어 김규은(19)-감강찬(23) 조가 10위(팀포인트 1점)에 그치면서 팀포인트 6점으로 10개 팀 가운데 9위에 머물렀다.
이제 여자 싱글 최다빈(18)과 아이스댄스의 민유라(23)-알렉산더 겜린(25)이 11일 순위를 끌어올려야 한다. 단체전은 쇼트프로그램 성적 1~5위 팀만 메달 색깔을 결정하는 프리스케이팅에 출전할 수 있다.
강릉=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