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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영향력 막대한데…불신의 학생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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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영향력 막대한데…불신의 학생부

입력
2015.12.1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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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년도별 모집시기별 선발비율.
학년도별 모집시기별 선발비율.

지난 달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자 예상 밖‘불수능’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시험 수준은 2, 3문제만 틀려도 1등급을 받기 힘들 정도였다. 난이도가 높은 시험이 아니었지만, 이런 반응이 나온 것은 수년간 이어져 온 ‘쉬운 수능’기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여기에 대학들도 수능 성적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는 정시모집 비중을 줄이면서 ‘대학입시=수능’이라는 공식은 깨지고 있다.

반면 수시모집 비중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그 중 ‘학생부종합전형’은 내신 최상위권 학생들이 도전할 수 있는 ‘학생부교과전형’과 달리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와 자기소개서로만 승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중상위권 학생들이 도전한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서는 학생부종합전형을 ‘복불복 전형’이라는 불만이 나온다.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학생은 말한다…“반 배정은 로또”, “학생부는 자소설(自小說)”

가장 큰 불만을 토로하는 쪽은 수험생이다. 담임교사 재량으로 작성되는 학생부에 기재되는 내용이 교사의 성향과 역량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서울 노원구의 한 공립고 2학년생인 김모(17)양은 일찌감치 학생부종합전형을 포기하고 수능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담임교사가 작성하는 학생부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김양은 “지난해 담임 선생님과 유독 사이가 좋지 않았던 친구의 학생부에 ‘안 될 것 같은 일에는 도전도 하지 않는다’, ‘수업 시간에 잠을 많이 잔다’는 평가 내용이 적혀 있는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도 선생님에 따라 학생부 내용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니 반 배정을 로또처럼 여긴다”고 말했다. 어떤 담임 선생님인가에 따라 학생부 내용이 널뛰기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의 한 사립대 영문과에 합격한 이모(19)양도 학생부종합전형의 피해자로 자처한다. 전북의 한 작은 공립 고교에 다니는 이 양은 주위에서 일찌감치 수험생의 전공 적합성과 잠재 역량을 평가한다는 ‘학생부종합전형’ 취지에 부합하는 인재로 꼽혔다. 이양은 전교생이 400여 명에 불과한 작은 시골학교에서 사교육 없이 영어원서를 탐독하며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교내 영어 대회의 상도 휩쓸다시피 했지만 학생부에서 난관에 부딪쳤다. 이 양은 “2,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학생부 양식을 나눠주고 학생에게 직접 내용을 채워오라고 시켰다”며 “쓰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학생부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고등학생 수준의 소설로 칸을 메울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양은 “일일이 상담하면서 정성스레 학생부를 써주는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학부모가 말한다…특목고ㆍ자사고 못 보내 ‘통탄’

학부모들에게도 학생부 종합전형은 ‘깜깜이 전형’이다. 학생부에 기재된 비교과활동을 주로 평가한다는 원칙 이외에는 대학들이 학생 선발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두 딸을 둔 학부모 최모(48)씨는 “학생부종합전형에 ‘고교등급제’가 적용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국내 유수의 특목고를 졸업한 첫째 딸(21)과 서울 서초구 한 공립 고교에 재학 중인 둘째 딸(17)을 키우는 최씨는 “학생부종합전형이 고교등급제라는 점은 내가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씨는 “큰 애가 다닌 학교에는 리더십 프로그램, 영어 모의 재판, 사회 명사 특강 등 교내 행사가 줄줄이 열려 내가 신경을 전혀 안 썼는데도 저절로 학생부가 충실하게 채워졌다”며 “딸이 학생부종합전형(당시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지원한 두 학교 모두 손쉽게 합격해 누구에게나 쉬운 전형인 줄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4년 만에 다시 치르는 대학입시의 사정은 전혀 딴 판이었다. 둘째 딸은 일반고에 다니지만 전교 2~3등을 놓치지 않은 수준이라 성적은 큰 딸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학생부 활동에 채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씨는 “둘째 딸 학교는 영어 작문 백일장, 수학 경시대회 정도가 교내 활동의 전부”라며 “손 놓고 있다가 뒤늦게 컨설팅 업체에 수십만 원을 내고 상담을 받았지만 일반고 학생이면 학생부종합전형은 마음 비우라는 황당한 답변만 들었다”고 털어놨다. 특목고생과 일반고생은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애초에 경쟁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이 최씨가 내린 결론이다.

교사는 말한다…“업무 과중” “학생 인생 좌우 부담”

교사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경기 용인의 한 공립 고교에서 2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김모(28)교사는 “학생의 잠재력을 평가한다는 취지는 백 번 공감한다”면서도 “제도만 도입해놓고 운용의 책임은 모두 교사에게 떠넘겼다”고 하소연했다. 수업과 행정업무를 하면서 수십 명 학생의 관심사와 학교 생활을 면밀히 상담하고 관찰해 공정한 학생부를 작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해군이 되고 싶어 하는 학생에 대해 ‘해군을 지망한다’고 단순하게 써줄지, ‘서해교전, 연평해전에서 물러서지 않은 군인들을 보고 해군의 꿈을 갖게 됐다’라는 식으로 정성스레 기재할지는 전적으로 교사 개인의 성향과 주관에 좌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사립고 교사는 “어떻게 기록했을 때 학생들이 붙고 떨어지는지 교사 스스로도 가늠하기 어렵다는 게 큰 문제”라며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지만 모든 학생을 100% 공정하게 평가한 학생부를 기재했다고 자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실정인데도 학생부 기재요령에 대한 체계적인 연수나 매뉴얼은 전무한 실정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관계자가 각 교육지원청에서 1년에 두 차례 ‘입시 전형 설명회’를 하면서 간단한 작성요령을 알려주는 것이 전부다.

김금주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상담실장은 “입학사정관제(2015학년 이후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명칭변경) 도입 이후 생활기록부로 인한 교사ㆍ학부모 갈등으로 상담을 요청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며 “학생의 재능을 보고 뽑겠다는 당초 취지를 살리려면 교사가 생활기록부를 작성할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도록 하고 매뉴얼을 구체화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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