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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멍청한 유엔?

입력
2016.08.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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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합(유엔)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에 설립됐지만 그 정신과 체계의 기조는 1920년에 창설된 국제연맹을 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설립된 국제연맹의 목표는 국제적 안보협력을 통한 대규모 전쟁의 방지, 경제ㆍ사회 부문의 국제협력 등이었다. 하지만 국제연맹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기력증을 드러냈다. 초기 10여 년 동안은 소소한 분쟁해결에 성과를 냈다. 하지만 사실상 설립 제안자인 미국이 불참하고, 영국과 프랑스의 이해가 자주 엇갈려 결국 2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했다.

▦ 유엔은 국제연맹의 실패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무력제재 수단이 없었던 국제연맹과 달리, 유엔군(평화유지군)을 통한 집단적 무력행사를 가능토록 한 배경이기도 하다. 인권 환경 빈곤 기아 여성 등 인류 보편적 사안을 국제협력 의제로 확장시킨 것도 달랐다. 초기 유엔의 가장 두드러진 활동 중 하나는 6ㆍ25 전쟁 개입이다. 대한민국을 한반도 내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한 유엔은 북한의 남침에 즉각 결의 제83호를 통해 대규모 유엔군을 파병함으로써 우리나라를 위기로부터 건져냈다.

▦ 하지만 모든 동맹이 그렇듯, 유엔도 초기의 활기를 잃고 이내 이해충돌에 따른 무기력증을 드러냈다. 냉전 중엔 안전보장이사회 내에서 미국과 소련의 끝없는 대립으로 주요 기능이 마비됐다. 5대 상임이사국만 구속력 있는 안보리결의를 좌우하는 비민주성도 늘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코소보 전쟁 개입은 인도적 명분을 앞세운 무력사용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을 불렀다. 아울러 인권과 환경문제 같은 유엔의 교과서적 입장은 종종 개별 국가의 현실과 괴리돼 적잖은 반발을 사기도 했다.

▦ 최근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유엔에 막말을 퍼부었다. 취임 직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그는 마약범에 대한 재판 없는 현장사살을 지시했다. 그 결과 불과 50여일 만에 약 1,800명의 용의자들이 경찰과 자경단에 의해 사살되는 피 바람이 일었다. 유엔이 필리핀의 초법적 법 집행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그러자 그는 즉각 ‘멍청한 소리(stupid)’라며 “유엔은 지금껏 테러나 분쟁을 해소하는 데 실패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두테르테 대통령도 과격하지만, 유엔에 대한 국제사회의 냉소와 불신도 만만찮은 현실을 일깨운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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