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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촛불을 든 청소년들

입력
2016.11.1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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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촛불집회를 지켜보면서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먼저 아무런 자격이 없는 최순실 씨가 국정을 마음대로 농단한 것에 국민 다수가 느끼는 분노에 크게 공감했다. 분노의 마음을 촛불로 밝혀 국정 농단에 대한 법적 정치적 도덕적 책임을 묻는 것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다. 언론 보도들이 사실이라면 정말 기가 막히고 상상하기도 싫은 정부의 통치 아래 살아온 셈이다.

이번 촛불집회가 기존의 집회들과 달랐던 점은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청년 장년 노년 세대가 이념과 관계없이 고르게 참여했고, 온 가족이 함께 나온 경우도 많았다. 이 가운데 특히 내 시선을 끈 이들은 중ㆍ고교 청소년들이었다. 집회 참여를 이끈 조직은 ‘21세기청소년공동체희망’ ‘중고생혁명’ 등이라고 하는데, 청소년들까지 집단으로 참여한 것을 지켜보니 이번 사태가 국민 다수에게 얼마나 큰 분노와 참담함을 안겨줬는지를 알 수 있었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온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60년 4월혁명과 1987년 6월항쟁에서도 청소년들은 시위에 참여해 독재정권 타도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나는 요즘의 청소년들이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국가 일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생각해 왔던 터라 이번 집회에 참여해 자기 생각을 논리적이고 당당하게 표현하는 청소년들을 보며 적잖이 놀랐다.

그들은 이번 사태가 학교에서 배운 헌법 정신을 부정한 사건이고, 정의롭지 못한 정부에 항의하는 게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며, 따라서 자신들이 집회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했다. 놀랍고 미안하며 또 기뻤다. 이런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우리 어른들은 무슨 짓을 하고 있던 걸까.

교복을 입고 집회에 나온 청소년들의 진지하면서도 밝은 모습을 보면서 이들이 처한 상황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사회에선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면 대학 입시가 이미 시작된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학원으로 달려가 밤 10시가 넘어야 집으로 돌아오고, 짧은 자유 시간마저도 학교 숙제와 학원 숙제에 모두 바쳐야 하며, 친구들과의 관계도 우정보다는 경쟁 아래 놓여 있다.

집안 형편이 부유한 청소년들은 공부에 열중하기만 하면 된다 치더라도,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청소년들은 공부 압박에 더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유행한 ‘수저론’에서 ‘흙수저’ 또는 ‘무수저’를 얘기하는 청소년들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나느냐에 따라 삶이 결정된 현실을 깨닫게 될 때 청소년이 느끼는 분노와 절망감에 대해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사태는 일차적으로 최순실 씨와 그와 관련 있는 사람들이 벌인 희대의 국정 농단 사건이다. 동시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사건이다. 청소년들이 특히 ‘정유라 사건’을 보면서 느꼈을 분노와 환멸을 상상해 볼 때, 공정과 정의를 상실하고 특권과 부패가 넘쳐나는 사회를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이들은 10대의 정치적 참여를 우려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젠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시민들이 경찰과 대치할 때 중재 역할을 하던 이들이 청소년들이었고, 이번 시위를 재치 넘치는 방식으로 평화 시위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이들도 바로 10대들이었다.

촛불집회를 지켜보면서 들었던 마지막 생각은 분노와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한 줄기 희망이다. 청소년들이 든 촛불에서 나는 이 사회가 치유되고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의 불씨를 엿볼 수 있었다. 그래, 포기하지 말자. 이런 아이들이 이끌어 갈 이 나라는 결국 ‘헬조선’이 아닌 ‘헤븐대한민국’이 될 수 있을 거야. 나 자신에게 건넨 위로의 말이다.

박상희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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