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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안 괜찮으면서 괜찮다 말하는 우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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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뷰] 안 괜찮으면서 괜찮다 말하는 우리에게

입력
2017.09.2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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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의 다섯 번째 시집을 요약하면 '이별을 통한 사랑과 자아의 발견'이다. 단정한 기다림과 고백이 60편에 담겼다. 강희갑 제공
이병률의 다섯 번째 시집을 요약하면 '이별을 통한 사랑과 자아의 발견'이다. 단정한 기다림과 고백이 60편에 담겼다. 강희갑 제공

바다는 잘 있습니다

이병률 지음

문학과지성사 발행ㆍ144쪽ㆍ8,000원

심보선 이전에 이병률이 있었다. 문학소녀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스타 시인의 계보에. 서정시도 패션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한 베스트셀러 작가의 계보에. 훈훈한 외모, 다정한 말투도 비결이라면 비결이겠지만 무엇보다, 자아성찰을 순정하게 풀어내는 시작(詩作) 스타일이 대중의 보편 감성을 건드린다.

‘터미널에서 스친 한 노인이/ 한 손에는 약봉지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전화기를 들고/ 마음이 아파서인지 몸을 반쯤 접으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순수하게 했는데/ 나한테 이러믄 안 되지/ 나는 마음의 2층에다 그 소리를 들인다/ 어제도 그제도 그런 소리들을 모아 놓느라/ 나의 2층은 무겁다// 내 옆을 흘러가는 사람들의 귀한 말들을 모으되/ 마음의 1층에 흘러들지 않게 하는 일// 그 마음의 1층과 2층을 합쳐/ 나 어떻게든 사람이 되려는 것/ 사람의 집을 집으려는 것’ (‘지구 서랍’ 부분)

2006년 현대시학 작품상을 수상했을 때 시인은 자신의 연보를 이렇게 정리했다. ‘영화사 전전, 방송사 전전, 잡지사 전전, 출판사 전전, 기획사 전전, 음반사 전전, 아니 전력을 다해 세계를 전전.’

압축된 연보를 풀면 이렇다. 한 라디오 방송작가로 활동하던 차에 통장을 털어 단편영화를 제작했고, 프랑스 파리영화학교에서 2년을 보낸 이병률은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지만 해외에 있어 청탁 한 번 받지 못했다. 대신 전력을 다해 세계를 전전했고 돌아와 다시 방송사와 음반사와 출판사를 전전했다. 여행에서 쓴 글과 찍은 사진을 엮은 ‘끌림’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스타 작가가 됐다.

“중요한 것은 옥탑방과 장도여행이 이병률 시의 두 축을 이루고 있으며 그 둘이 싸우고 화해하면서 친밀성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것에 접근하여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첫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에 붙인 고 최하림 시인의 해설 이후, 이병률의 시는 줄곧 ‘고독과 방랑’으로 요약됐는데 다섯 번째 시집도 이 거푸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시인은 이제 ‘고독과 방랑’을 통해 사람의 자리를 묻고, 사랑과 가까워지는 일에 힘을 기울인다.

‘바깥의 일은 어쩔 수 있어도 내부는 그럴 수 없어서/ 나는 계속해서 감당하기로 합니다/ 나는 계속해서 아이슬란드에 남습니다// 눈보라가 칩니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 우리는 혼자만이 혼자만큼의 서로를 잊게 될 겁니다’(시 ‘이별의 원심력’)

신작은 이런 단정한 기다림과 고백의 기록들이다. 홀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 60편을 읽고 나면 “멍이 몸 바깥으로 홀연히 나가고 있는”(김소연 시인) 듯한 위로를 받는다. 시집 뒤 표지에 붙인 산문에 시인은 이렇게 썼다.

‘우리는 안 괜찮으면서 괜찮다고 말합니다. 당신은 혼자를 핑계로 혼자만이 늘릴 수 있는 힘에 대해 모른 척합니다. (…) 오래 전하지 못한 안부를 전합니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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